소년원 ‘축구 봉사’ 동참한 호남대 축구학과 여성 3인방 지영주-이하린-김진희 씨
꿈은 달라도 ‘축구는 내사랑’
《 ○ 프롤로그―소년원 운동장에서
모두가 같은 모습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피부. 군대 훈련병들이 떠올랐다. 가까이 갔다. 좀 달라 보였다. 한 아이는 팔에 용 문신을 했다. 다른 아이의 다리에는 칼자국이 보였다. 민준이(가명·17)는 이 중 한 명이다. 다부진 체격. 유독 얼굴이 어두웠다. 그때 한 여성이 다가갔다. 친누나 같이 푸근한 미소 때문일까. 잔뜩 경계하던 민준이의 입이 트였다. 민준이는 축구선수였다. 집이 가난했다. 그래서 감독이 차별한다고 생각했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결국 감독에게 크게 대들다가 학교를 뛰쳐나갔다.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다. 얘기를 듣는 여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축구하는 사람 모두, 이런저런 상처가 있지. 나도 있었고…. 지금이라도 후회하고 뉘우치면 그걸로 됐다.” 따뜻한 마음을 읽었을까. 민준이가 흐느꼈다. 둘은 공을 들고 일어섰다. 》 광주 광산구의 고룡정보산업학교. 일반인들은 소년원이라고 부른다. 민준이는 8일 오후 신나게 공을 찼다. 축구부를 그만두고 처음이었다. 이날 30분 넘게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민준이와 민준이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정말 좋다.” “누나들을 보니 괜히 설렌다. 축구까지 잘하니 부럽다.” “다음엔 편지도 들고 와달라.” 소년원을 찾은 이들은 지영주(29) 이하린(20) 김진희 씨(21). 호남대 축구학과 여학생 3인방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들.
○ 영주 이야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수채화를 옮겨 놓은 듯한 잔디밭. 날렵한 자태를 뽐내는 과녁. 중3 겨울 무렵, 경남체고의 양궁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양궁장에 처음 갔을 때다. 부모는 반대했다. “절대 안 돼.” 집안일이나 도우라 했다.
낙심한 채 몇 개월이 흘렀다. 누가 찾아왔다. 얼굴이 까맸다. 축구부 감독. 여자 선수가 드물던 시절이라 운동 좀 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힘들게 허락을 받았다. 고향인 경남 합천을 떠나 마산으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훈련 첫날.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런데 공만 잡으면 넘어졌다. 자신감이 사라졌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경기 때면 다른 선수들의 부모가 와서 응원했다. 자기 가족은 그렇지 못했다.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다행히 대학에 갔다. 축구 특기생으로. 기회가 보였다. 실력만 좋으면 인정받는 분위기. 기술이 몸에 붙기 시작했다. 욕심이 생겼다.
하루는 자고 일어났는데 발뒤꿈치가 아렸다.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오산이었다.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지듯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에 갔더니 진단이 나왔다. 족저근막염. 완치가 어려울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안 될 운명인가 했다. 한동안 축구화를 꺼내지 않았다. 며칠 뒤 친구가 집에 왔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녀석. 실력도 좋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어제 축구 그만뒀어.” 친오빠가 크게 사고를 쳐서 당장 돈 버는 게 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을 꼭 붙잡았다. “넌 축구공 만질 여유는 있잖아. 꼭 선수로 성공해라. 그래야 나도 미련이 덜 남을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슴속 꺼져 가던 불이 확 지펴지는 느낌. 더 주저앉을 여유가 없었다. 재활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라운드에 다시 섰다. 몸은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왔다. 피는 더 뜨거워졌다. 2004년 졸업하면서 실업팀에 스카우트됐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엔 초등학교 코치, 심판, 축구교실 지도자를 지냈다. 그러다 대학에 다시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인생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 주기 위해.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그래서 원서를 썼다. 호남대 축구학과에.
○ 하린이 이야기
“어쩜, 이렇게 예쁠까.” 지나는 사람마다 소녀를 보곤 이런 말을 했다.
소녀는 말이 별로 없었다. 수줍음이 많았다. 가끔 눈빛이 살아날 때가 있었다. 남을 꾸며줄 때. 피부미용사이던 어머니 피를 물려받았을까. 중학생 때부터 미용 일을 배웠다.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호남대 뷰티미용학과에 갔다. 꿈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이 점점 멀어져 갔다. 신이 나지 않았다. 수업에 빠지는 날이 늘었다. 남을 꾸며 주는 대신 자신을 치장하느라 바빴다.
어느 날, 고등학교 앞을 지나다 발걸음을 멈췄다. 밤 10시가 지난 늦은 시간. 시끌시끌했다. 호기심에 정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가 봤다. 1시간 넘게 넋을 잃고 지켜봤다. 축구부 선수들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켜만 봐도 손에 땀이 가득 찼다. 가슴속 심지에 불이 붙었다. 당시에는 축구 규칙도 몰랐다. 하지만 결심했다. 축구 관련 일을 하겠다고. 저 뜨거운 열정을 나누고 싶다고.
축구 선수인 남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했다. 한번은 그가 무릎을 크게 다쳤다. 그래서 부상과 관련된 책을 다 찾아봤다. 서울에 있는 병원도 직접 알아봤다. 이렇게 도와주면서 또 한 번 느꼈다. 제대로 축구를 공부하고 싶다. 그래서 옮겼다. 호남대 축구학과로.
○ 진희 이야기
아버지는 항상 첫째가 씩씩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태권도를 시켰다. 재능이 있었다. 전국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고교에 온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골반이 끊어질 듯 아팠다. 10분을 앉아 있기 힘들 만큼 고통이 지속됐다. 병원에선 선천적으로 골반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선수생활을 하기 힘들 거라 했다.
이날 저녁. 긴 가족회의 끝에 태권도를 그만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마침 태권도에 흥미를 잃어 가던 터라 마음이 시원했다. 하지만 잠을 이루지는 못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 춥지도 않은데 몸이 덜덜 떨렸다.
고민만 하다 고교 시절을 보냈다. 영남대 체육학과에 합격했다. 대학 생활은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수동적으로 따라만 갔다. 이건 아니다 싶어 몇 달 뒤 자퇴했다.
친구랑 여행을 다녔다. 제주, 태백, 남해…. 전국을 훑었다. 신기했다. 여행지마다 축구 대회가 열렸다.
글쓰기도 원래 좋아했다. 다른 아이들은 어버이날만 쓰는 편지를 평소에 ‘뿌리는’ 수준으로 많이 보냈다. 중고교 시절에는 신문부 활동을 했다. 학생기자 직함만 달면 신이 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축구 기자가 되면 어떨까. 그래서 인터넷 매체 축구 기자로 활동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축구 선수 아들을 뒷바라지하던 어머니를 인터뷰할 때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결심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축구 기자가 되자고. 공부도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원서를 냈다. 호남대 축구학과에.
○ 에필로그―학교에서
이들은 이렇게 만났다. 학년은 서로 다르다. 영주는 졸업학력이 인정돼 3학년, 하린이는 전과해서 2학년, 진희는 1학년. 어쨌든 축구학과는 올해가 처음이다. 학기 초에는 각자 다른 이유로 고생했다.
영주는 많은 나이가 부끄러웠단다. “첫 수업 시간에 학생회장이 뭔가 설명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물었죠. 몇 살이냐고. 스물넷이라기에 ‘나는 계란 한판’이라 했어요. 분위기가 ‘싸’해졌죠. 그때 생각했어요. 조용히 지내자고.”
하린이는 처음부터 화제였다. 학과가 개설된 이래 짧은 치마에 짙은 화장 여학생은 처음이었다. “답답했죠. 화장한다고 축구 공부 못 하는 게 아닌데. 남자친구 만들러 왔다는 등 이상한 소문에 속이 상했어요.”
진희는 낯선 환경이 힘들었다. 한동안 밥을 혼자 먹었다. 엘리베이터도 혼자 탔다. “거의 만날 고향 친구들과 밤에 얘기하며 울었어요. 전염병 환자가 된 기분이었죠.”
학기 초, MT를 갔을 때 3명은 같은 방을 썼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때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 하나는 또렷이 기억했다. 셋이서 학과의 중심이 되자는 약속.
이들은 약속을 지켰을까. 호남대 축구학과의 장재훈 교수는 “학과 성적, 동아리 활동, 어학 등 모든 면에서 여학생 3총사가 학과 상위권이다. 축구학과의 대표 브랜드”라고 치켜세웠다.
호남대 축구학과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박기인 이사장이 직접 축구부를 챙길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전문 인재를 육성하자며 2005년 이 학과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꿈이 영그는 중이다. 나이, 고향, 성격, 하던 일에 공통점은 없다. 목표 역시 지도자(영주) 행정가(하린) 기자(진희)로 서로 다르다. 유일한 공통분모는 축구.
인터뷰가 끝날 때쯤 물어봤다. “여자 선배가 별로 없어 걱정되지 않느냐”고. 유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편견이 있다면 실력으로 뻥 걷어차 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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