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하는 소리가 들리니 학생들이 귀를 틀어막는다. 곧이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에서 하얀 쌀 뻥튀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 옆에선 낫을 든 초등생들이 다 자란 벼를 베어 내느라 분주하다. 다른 학생들은 베어낸 벼를 지게에 실어 탈곡기로 나른다. 한쪽에선 벼 이삭을 찧는 절구소리가 ‘쿵쿵’ 울리고 여학생들은 자기 키만 한 떡메를 들고 힘껏 떡 방아를 찧는다.
어느 시골 농촌마을에 가을 잔치가 열린 것일까? 아니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 도심 한복판 초등학교의 풍경이다.
요즘 서울 등 도시지역의 일부 초등학교에선 때아닌 추수작업이 한창이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친환경 교육’이 교과학습과 인성교육,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교육대안으로 떠오르면서 학생들에게 실제 무공해 벼농사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학교들이 등장한 것이다.
서울 중구에 있는 서울충무초도 그중 한 곳. 8일 이 학교 전교생 300명은 교내에서 추수행사를 진행했다. 학생들이 교내에 모를 심은 것은 올해 5월. 학생들은 6명씩 짝을 지어 마련한 총 50개의 모판에 벼를 심고 ‘기쁜 농장’ ‘쑥쑥 농장’ ‘초록 농장’ 등 이름표를 붙였다. ‘무럭무럭 자라줘’ ‘햇볕이 잘 들게 해 주세요’와 같은 바람도 써넣었다.
이들은 매일 자신의 모판을 들여다보며 벼가 어떻게 자라는지, 모양과 색깔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고 그것을 ‘관찰일지’에 적었다.
반가운 친구도 생겼다. 벼메뚜기, 풀무치, 논거미 등 도시에선 보기 어려운 곤충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 어느새 참새까지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 학생들은 ‘참새로부터 벼를 지키겠다’면서 난생처음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웠다. 벼 기르는 재미에 푹 빠진 3학년 김정민 군(9)은 “전에는 친구끼리 늘 게임 관련 얘기만 했는데 벼를 기르기 시작한 후로는 친구들끼리 곤충과 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재밌어졌다”며 달라진 교실 분위기를 전했다.
이 학교 이재관 교장은 교내 벼농사를 진행하면서 자연물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에 큰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기르는 벼는 물론이고 교내에 산재한 풀과 작물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는 것. 벼농사를 지으면서 함께 교내 텃밭에서 기른 야채를 급식에 내놓으니 야채를 안 좋아하는 학생들도 식판을 ‘싹싹’ 긁어 먹는다고 설명했다.
‘학교판 벼농사’에 동참하고 있는 서울 구로구 서울천왕초 조진희 교사는 현재 많은 학교가 텃밭 가꾸기를 진행하지만 벼농사 체험이야말로 ‘효과 만점’의 자연교육이라고 말했다. 조 교사는 “이전부터 교내 텃밭을 운영했지만 학교 직원이 관리를 전담하고 학생들은 관련 수업 때 가끔 구경하는 수준이었다”면서 “모내기, 천연 비료 만들어 주기, 추수하기 등 친환경 벼농사 전 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면서 자연의 소중함은 물론이고 우리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커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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