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등산철을 맞아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비바크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비바크는 부피가 크고 무거운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침낭과 매트리스만을 이용해 야외에서 숙박하는 것. 야간 산행이나 ‘나 홀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등산장비가 발달하면서 최근 수년 사이 인기 있는 산행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국립공원 내 비바크가 불법인 데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크다는 것. 단속도 그만큼 쉽지 않다. 보통 단속직원들이 6∼10시간씩 산을 타야 하는 데다 등산객들은 더 한적하고 전망 좋은 곳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 10여 명이 ‘심야 단속’에 나섰다. 오전 9시 사무소를 떠나 칠선계곡을 거쳐 천왕봉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6시. 꼬박 9시간이 걸려 단속 지역에 도착한 이들은 오후 8시경 천왕봉과 중봉 일대에서 버젓이 1인용 텐트와 침낭을 펴고 야영 중이던 등산객 5명을 찾아냈다. 등산객들은 갑작스러운 단속에 “몰랐다” “대피소에 못 가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하거나 일부는 “침낭 하나 깔고 자는데 뭐가 문제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들에게는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됐다.
그나마 이처럼 적발된 사람들은 다행이다. 단속을 피해 계곡이나 가파른 능선을 골라 다닐 경우 사고가 나도 구조가 어렵다. 또 지리산의 경우 종종 민가의 가축을 습격하는 반달곰이나 멧돼지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설악산처럼 산세가 험하고 암벽이 많은 곳에서는 실족이나 추락사고의 위험도 크다. 지난해 설악산에서 불법 산행을 하다가 4명이나 사망했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관계자는 “단속 과정에서 등산객이 직원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경우까지 있다”며 “사고 우려가 높기 때문에 가급적 너무 위험한 지형까지는 접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른바 비바크 마니아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설악산 비바크 명당 좀 알려주세요’ ‘속리산 무박(無泊)으로 야간 산행합니다’ 같은 내용의 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 ‘국립공원에서 비바크는 불법이 아니다’ ‘텐트를 가져가서 폴만 세우지 않으면 단속되지 않는다’ 같은 잘못된 정보도 많다. 3, 4개월에 한 번씩 야간 산행을 즐긴다는 김모 씨(45·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비바크나 야간 산행을 무조건 단속한다고 해서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며 “차라리 안전한 곳에 비바크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다음 달 15일까지 비바크나 야간 산행에 대해 특별단속을 한다고 16일 밝혔다. 과거와 달리 대피소 주변에서 암묵적으로 허용되던 비바크 행위도 이번에는 강력히 단속하기로 했다. 불법 산행을 유도하는 산악회나 여행사도 단속 대상이다. 공단 관계자는 “비좁은 대피소 때문에 그동안 근처에서의 비바크를 묵인하면서 자연 훼손 등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반드시 미리 대피소를 예약한 후 이용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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