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휠체어를 탄 여성이 들어왔다. 떠들던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학생 서른한 명의 눈이 한 곳에 쏠렸다. 교실에서 장애인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
휠체어에는 김종숙 씨(45·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지체장애 1급. 독서수업의 ‘일일 교사’로 학교를 찾았다. 18일 오전 10시 반 서울 광진구 양진초등학교 3학년 8반 교실이었다.
그가 먼저 물었다.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 없니?” 학생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조금 긴장한 듯했다. 그는 또 물었다. “선생님이 불편해 보이지 않니?” 학생들은 짧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선생님은 불편할 때가 많단다. 길을 가거나 지하철을 타기가 쉽지 않아.”
그는 학생들에게 ‘행복의 비밀’이라는 글을 읽게 했다. A4 용지 반 쪽 분량. 글을 읽은 뒤에는 자신들의 생각을 쓰게 했다. 그동안 그는 학생 사이를 돌아다니며 질문을 던졌다. “글 속의 노인은 돈 많은 사람을 보낸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 실망했을까요?”
글은 초등학교 저학년도 쉽게 이해할 만한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행복의 비밀이 ‘사랑’에 있다는 주제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40분간의 수업을 마치며 그는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선생님의 꿈은 뭐일 것 같니?” 학생들은 여러 대답을 내놓았다. “걷는 거요” “자유롭게 움직이는 거요”.
그의 차례였다. “맞아. 선생님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 하지만 꿈은 조금 달라. 선생님은 동화작가가 꿈이란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너희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낼 수 있잖아? 지금 쓰는 동화가 책으로 나오면 한 권씩 사 줄 거지?” 학생들은 그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는 듯했다.
수업은 길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에게서 친근감을 느꼈다. 수업을 마치고 써낸 감상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선생님, 꼭 꿈을 이루세요” “선생님도 고정욱 작가처럼 동화작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장애인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담임인 임소정 교사(38·여)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장애를 가진 분들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은 서울시교육청이 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 과정의 하나로 마련했다. 수업을 위해 장애인 18명이 3월부터 9월까지 모두 90시간 동안 특강을 들으며 독서지도사 자격을 땄다. 이들은 16일부터 31일까지 15곳의 학교에서 독서수업을 지도한다.
김 씨는 “일곱 달 동안 매주 교육을 받아야 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즐겁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됐다. 초중고교 모두 특수학교를 졸업해 일반 학교에 이날 처음 들어갔다.
시교육청은 장애인의 자기계발과 학생의 장애 이해를 돕기 위해 내년에 이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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