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디즘’의 어원이 된 작가 마르키 드 사드(1740∼1814)의 소설 ‘소돔의 120일’(동서문화사)은 최근 우여곡절을 겪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유해간행물 판정을 받고 배포 중지와 수거 결정이 났다가 논란을 빚었지만 이후 재심을 통해 19세 미만 청소년에 한해 판매를 금지하는 청소년유해간행물로 제재 수위가 낮아졌다. 이 사태는 ‘문학작품의 음란물 기준’부터 ‘출판 자유의 허용 범위’까지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그런데 시장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동서문화사가 ‘소돔의 120일’을 처음 시장에 내놓은 것은 8월 중순. ‘월드북 시리즈’의 201번째 권으로 번역 출간하면서 초판 1000부를 찍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악과 광기를 다룬 소설로 프랑스 루이 14세 치하에서 권력자들이 남녀 노예를 이끌고 120일간 벌인 향락을 그린다. 음란하고 잔혹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사유도 들어 있다. 동서문화사 이용 편집부장은 “연구자들을 위해 펴낸 책인 만큼 초판 판매에 3년이 걸릴 것을 염두에 두고 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간행물윤리위원회가 9월 중순 유해간행물 결정을 내린 뒤 상황은 급변했다. “근친상간과 가학·피학적 성행위 등 표현수위가 지나치고 반인륜적인 내용이 상당히 전개됐다”는 간행물윤리위의 결정 등이 앞다투어 언론에 소개되고, 한국출판인회가 유해간행물 결정을 취소하라고 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빚어지자 주문량이 폭주한 것. 출간 이후 한 달여 동안 전국에서 단 6권 주문이 들어왔던 이 책은 유해간행물 결정 이후 일주일 만에 초판 1000부가 동났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반짝’에 그쳤다. 다시 한 달여가 지난 11일 간행물윤리위가 재심에서 제재 수위를 낮춰 청소년유해간행물 결정을 내리자 주문이 삽시간에 줄었다. ‘퇴출’이 아닌 ‘성인물로 판매 허용’ 조치가 내려지자 책의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관심도 썰물처럼 빠진 것이다. 이용 동서문화사 편집부장은 “간행물윤리위의 결정으로 판매가 잠깐 늘었지만 씁쓸하다. 철학적인 사유가 가득한 책인데 과연 호기심에 사간 사람들이 책을 끝까지 읽기나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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