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익 2억 아내회사 뺏으려 청부살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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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요구하자 심부름센터에 의뢰… 살해 뒤 암매장
아내전화로 허위문자 보내기도… 남편-업자 구속

30대 여성을 청부 살해한 심부름업체 사장 원모 씨가 범행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경찰에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서울 성동경찰서 제공
30대 여성을 청부 살해한 심부름업체 사장 원모 씨가 범행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경찰에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서울 성동경찰서 제공
동아일보 취재팀은 22일 전국 심부름센터 5곳에 “혼내줄 사람이 있는데 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3곳에서 “살인도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3곳은 하나같이 전화를 바로 받지 않고 발신자 표시로 남겨진 기자의 휴대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N 흥신소’는 범행 대상의 나이와 직업을 상세히 물은 뒤 “(범행 대상을) 반신불수로 만드는 데 5000만 원, 살해하는 데 1억 원 정도 든다”며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중국 칭다오(靑島) 지역에서 넘어온 히트맨(청부살인업자)들이 일처리를 마치면 바로 출국하기 때문에 뒤를 밟힐 염려도 없다”고 덧붙였다. Y 심부름센터는 “살인을 포함한 ‘임무’ 완수 여부는 동영상과 사진으로 증명하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거절한 곳은 2곳이었다. 이들은 “폭행이나 살인을 해달라는 의뢰가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고 전했다. ‘K 리서치’ 심부름센터 A 대표(44)는 “‘없애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돈은 얼마든 줄 테니 다리 한쪽이라도 부러뜨려 달라’는 의뢰 전화가 매달 한 통 이상 온다”고 말했다.

이처럼 살인도 서슴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실제로 아내를 살해하고 회사를 가로채려던 남편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사업가 아내를 살해해 달라며 1억9000만 원을 건넨 정모 씨(40)와 정 씨의 부탁을 받고 직접 살인을 실행한 심부름센터 운영자 원모 씨(30)를 각각 살인교사와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남편 정 씨가 아내를 청부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건 올해 5월. 성동구에서 월수익 2억 원대의 자동차 렌트 매매 업체를 운영하는 아내 박모 씨(34)가 이혼을 요구하자 정 씨는 아내를 살해하고 업체를 독차지할 계획을 짰다. 정 씨도 강남구 논현동에서 유흥주점 3곳을 운영했지만 실적이 나빴다. 정 씨는 자신의 주점 종업원에게 ‘뒷조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심부름센터가 있냐’고 물어 원 씨를 소개받았다.

정 씨는 지난달 14일 아내 박 씨에게 “당신을 능력 있는 사업 파트너에게 데려다 줄 친구”라고 원 씨를 소개했다. 이어 원 씨는 박 씨를 성수동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으로 데려가 폐쇄회로(CC)TV가 잡히지 않는 곳에 차를 세우고 목 졸라 살해했다.

이들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박 씨가 가출한 것처럼 각본을 짰다. 원 씨가 시신을 경기 양주시 한 야산으로 옮겨 묻은 다음 날인 지난달 15일 정 씨는 “아내가 가출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원 씨는 박 씨가 살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여성의류 매장이나 네일숍 등 여성이 다닐 만한 가게에 다니며 물건을 사고 박 씨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노출을 피하기 위해 CCTV가 없는 가게만 골랐다.

경찰이 박 씨 휴대전화로 전화하면 “개인적인 문제로 잠시 나와 있을 뿐이다. 곧 돌아갈 테니 걱정 마라”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와 카드 사용기록을 추적해도 박 씨는 멀쩡히 살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박 씨가 자녀와 사업체를 남겨두고 이유 없이 사라진 점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집중 수사한 결과 박 씨의 카드가 사용된 가게 주변 CCTV에 항상 등장하는 원 씨가 심부름센터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점을 확인한 경찰이 추궁하자 정 씨와 원 씨는 범행을 자백했다.

심부름업체의 불법 영업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5년 2월 보험금을 노린 30대 여성이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남편을 살해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경찰은 집중 단속을 벌여 보름 만에 심부름센터의 불법영업 302건을 잡아냈다. 이후 ‘막가파’식 심부름업체는 자취를 감춘 듯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활동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은 “계약금만 챙긴 뒤 잠적하거나 ‘청부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사기 업체도 상당수”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현재 폭행 및 살인은 물론이고 “배우자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빼내 주겠다” 등 타인 개인정보 입수를 약속하는 심부름센터의 영업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합법적으로 정보조사 영업을 하려면 사건 당사자나 담당 변호사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아야 한다. 가압류 및 가처분 현황과 같은 신용정보를 조사하려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신용정보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심부름센터를 차릴 땐 사업자등록증 외엔 필요 서류도, 자격 요건도 없다. 원 씨는 지난해 5월 업소를 차리기 전에도 강도와 강도강간미수 등 전과 14범이었다. 올해 6월엔 의뢰를 받고 남의 개인정보를 빼내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입건됐지만 원 씨는 이달 7일까지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 직원 채용 공고를 내며 버젓이 심부름센터를 운영했다. 원 씨처럼 사생활 침해에 청부 살인까지 맡아서 하는 불법 업체가 언제 어디서든 문을 열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합법 심부름센터의 모임인 한국민간조사협회 박경도 서울본부장은 “심부름센터를 개설할 때 운영자의 전과 유무와 업무 범위 등을 명확히 구분하고 처벌 조항까지 갖춘 법을 만들어 불법영업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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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청부살해#심부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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