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외수-외국인 첫 한글강의 파우저 교수 ‘한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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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6일 03시 00분


“한국문화 세계화하려면 한글을 기둥으로 삼아야”

작가 이외수 씨(왼쪽)가 강원 화천군 이외수문학관에 전시된 자신의 글씨체를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작가는 “이 글씨체는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것”이라며 “라면 하나를 네 조각을 내 4일을 버티며 젓가락질하던 시절의 경험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화천=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작가 이외수 씨(왼쪽)가 강원 화천군 이외수문학관에 전시된 자신의 글씨체를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작가는 “이 글씨체는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것”이라며 “라면 하나를 네 조각을 내 4일을 버티며 젓가락질하던 시절의 경험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화천=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교수님. 이거 보세요. 어떻게 보이시나요?”

그는 A4용지를 꺼내 펜으로 큼직하게 영어 대문자 ‘ILL HV HL’을 적었다. ‘아이 엘 엘 에이치 브이…’라고 읽어야 할까 망설이는 사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거꾸로 보세요.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개새끼’로 보일 겁니다.(웃음)”

머뭇거리던 상대도 따라 웃는다. ‘기인’으로 불리는 이외수 작가(66)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최초의 외국인 교수인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51·미국)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두 사람이 22일 오후 강원 화천군 이외수문학관에서 만나 한글 예찬론을 나눴다.

○ “한글은 철학이자 과학이자 예술”

파우저 교수는 “(이외수)작가님이 직접 만든 한글폰트가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2600자의 한글 폰트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파우저 교수는 그에게 “한글이란 무엇이냐”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한글은 내게 철학이자 예술입니다. 자음과 모음은 음양의 조화예요.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을 형상화합니다. 한글 글자 하나에도 선의 조화, 여백의 미가 담겨있어요. 청각, 시각 등 오감에 부합되는 묘사들이 다 가능해요, 그림 그리듯 글을 씁니다. 한글은 ‘완전성을 가진 아름다움’이라고 봅니다.”(이 작가)

파우저 교수는 입을 벌리며 “한글은 발음할 때 입술과 혀의 모양이 반영됐다. 한글은 과학”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외국인 교수의 한글 사랑에 감동했는지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를 영어로 할 수 있느냐”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글의 가치가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20대의 67.3%는 한글날을 모른다’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조사가 화두가 됐다. 파우저 교수는 “미국에서는 독립기념일은 공휴일”이라며 “이날은 미국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한글은 한국민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작가도 “한글날은 ‘잔칫날’인데 공휴일이 아니다. 나는 잔치를 즐기려 한글날에는 글쓰기 작업도 안 한다”고 답했다. 그는 한글날 공휴일 지정을 위해 트위터 리트윗 운동을 펼치고 있다.

○ “글을 많이 읽으면 난제 해결”

두 사람은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등 청소년들의 ‘외계어’를 비롯해 요즘 언어 습관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이 작가는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칼’이나 ‘싸운다’는 말이 없었어요. 대신 ‘사호다’, ‘갈’이었죠. 안 무섭죠.(웃음) 전쟁 후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경음화돼 ‘싸우다’와 ‘칼’이 됐어요. 요즘도 ‘한잔 마시자’가 아니라 ‘한잔 꺾자’고 하죠. 사회가 각박해졌다는 방증인데요. 언어란 게 원래 그런 겁니다.”(이 작가)

“교양 있는 언어도 알고 외계어도 알아야 하는 건데, 교양은 부족한 상태에서 외계어만 아는 것은 문제죠.”(파우저 교수)

“한 중학교 선생님이 ‘K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라고 시켰더니 학생들이 다 공부하다 죽는 이야기를 썼답니다.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글자를 붙잡고 죽음을 생각하다니…. 소름끼쳐요. 책만 읽어도 문제가 해결됩니다. 언어는 체험이에요. 글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게 되고 머리와 가슴을 두루 발전시킵니다. 그러면 자살 안 해요.”(이 작가)

두 사람의 대화는 한글의 세계화로 이어졌다.

“외국사람들은 ‘GANGNAM’을 원래 ‘갱냄’으로 발음하는데 싸이 덕분에 이제는 ‘강남’으로 정확히 발음해요. 보스턴에 있던 조카도 강남스타일 덕분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한국문화가 세계화되려면 한글을 ‘문화 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파우저 교수)

“싸이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웃음). ‘글 밥’을 40년 먹은 작가로 아름다운 문자를 쓰면서도 세계화를 못 시켰으니…. 한글 보급은 국가 차원의 투자와 관리가 보강돼야 해요.”(이 작가)

화천=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이외수#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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