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미모, 절개를 지닌 백제 여인 도미 부인은 왕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기지를 발휘해 몸종을 자신인 것처럼 왕에게 보냈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왕은 분개해 도미의 두 눈을 빼 보복한다. 도미 부인은 통곡하며 목숨을 부지한 남편을 데리고 먼 고구려 땅으로 가 생을 마감한다.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백제시대 ‘도미 부인 설화’의 내용이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항은 도미설화의 근거지로 알려져 있다.
봄과 가을이면 바다 낚시꾼으로 성황을 이룬다. 서해를 오가는 여객선도 붐빈다. 수려한 경관과 먹을거리도 풍부해 오천항은 항상 넉넉하다.
○ 정절의 여인 도미부인과 수영성
오천항은 서해안고속도로 광천 나들목이나 대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황금 들녘 사이로 난 지방도 610번을 따라 20분이면 도착하는 작은 포구다. 천주교 성지 갈매못을 지나 언덕배기에 오르면 면사무소 앞에서 ‘도미부인사당’이라는 간판을 만난다.
차가 오를 수 있지만 가을 정취를 제대로 맛보려면 임도를 따라 걸어서 오르는 것도 좋다. 해발 300여 m 상사봉 중턱에 있는 사당. 도미 부인의 영정을 본 뒤 설화를 읽으면 절로 숙연해진다. 국립무용단은 9월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한 공연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렸다. 설화의 근거지가 ‘과연 오천이냐’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설화에 언급된 지형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사당까지 있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사당 옆 고리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 평생을 기약한다는 뜻에서 자물쇠를 채워 보자.
이왕희 보령시 문화공보실장은 “설화이긴 하지만 지배자의 일방적 횡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하층민의 의지는 귀감이 될 만하다”고 평가한다. 보령시는 도미 부인 설화를 만화책자로 만든다.
상사봉 정상 전망대에서는 멀리 원산도 삽시도 녹도 등 서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 사이를 오가는 고깃배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카메라 셔터에 손이 간다.
산에서 내려와 찾을 곳은 충청수영성. 조선 초기에 설치됐다가 고종 때 문을 닫은 수군의 주둔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충청수영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만도 142척에 8000여 명. 과거 오천항이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성곽 대부분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오천항은 한 폭의 그림이다.
○ 방파제 낚시 손맛, 간자미도 일품
천북면과 연결되는 홍보지구 방파제와 오천항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도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서 건져 내는 어종도 각양각색이다. 망둥이 주꾸미 숭어는 물론이고 언제부턴가 꽁치 고등어도 올라온다. 갯지렁이를 반 토막 잘라 낚싯 바늘에 꿰어 바다에 던지면 5분도 안 돼 입질한다. ‘쓱쓱’ 듬성듬성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다. 가을 숭어는 쫄깃하고, 고등어는 기름지며 고소하다.
오천항은 배낚시의 천국이다. 앞바다 천수만은 플랑크톤이 풍부해 우럭 노래미 광어 등 이 지천이다. 본격적인 낚시철로 접어들면서 요즘 주말과 휴일이면 100여 척의 낚싯배에 자리가 없다. 예약이 필수. 제주도처럼 2∼3시간 짧은 낚시 체험이 없는 게 아쉽다.
오천항 비린내는 시장기를 재촉한다. 10여 개의 크고 작은 식당은 대부분 횟집이다. 어느 곳이든 식탁은 바다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게 간자미회무침이다. 간자미는 홍어만큼 크지 않다. 3마리는 합쳐야 1kg쯤 된다. 뒤집어 보면 마치 사람이 웃는 듯한 기이한 모습이다. 가격은 홍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나리와 오이 양파 당근 등 각종 야채와 초고추장으로 무치면 새콤달콤, 졸깃졸깃 홍어 맛 부럽지 않다. 잠수부들이 심해에서 건져 낸 키조개의 관자(패주)도 유명하다. 주변 문화재와 상사봉 등산, 그리고 방파제 낚시 체험과 식사까지 다해도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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