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주면 뚝딱…이게 초등학교 운동회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5일 03시 00분


■ 늘어가는 위탁 운동회

올해 5월 이벤트 회사에 맡겨 운동회를 개최한 서울 광진구 B초등학교. 전문 레크리에이션 업체가 준비해온 대형 풍선에 바람이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바람 잡는 특공대’ 게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앉아 있다. B초등학교 제공
올해 5월 이벤트 회사에 맡겨 운동회를 개최한 서울 광진구 B초등학교. 전문 레크리에이션 업체가 준비해온 대형 풍선에 바람이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바람 잡는 특공대’ 게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앉아 있다. B초등학교 제공
“청팀과 백팀 중 큰 소리로 응원하는 팀에 무려 100점을 드립니다.”

지난달 12일 울산 중구 A초등학교의 가을 운동회에서 이 같은 멘트를 날린 사회자는 교무부장도, 체육교사도 아니었다. 레크리에이션 전문강사였다. 전교생 850여 명인 이 학교는 1963년 개교 이후 처음으로 M이벤트 전문업체에 맡겨 운동회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팀별 구호나 율동을 따로 연습하지 않았지만 사회자와 진행보조들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 업체는 지난해부터 울산에서만 14번 운동회를 진행했다. 비용은 회당 200만∼300만 원.

올해 5월 열렸던 서울 광진구의 B초등학교 운동회도 장소만 학교일 뿐 전문 이벤트를 연상시켰다. 운동장에는 경기에 사용될 지구 모양의 대형 애드벌룬과 작은 공을 몰 때 사용할 1m짜리 주걱 등 레크리에이션 도구가 가득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든 오자미나 박 등은 찾아볼 수 없고 업체가 만들어온 장비와 도구로 운동회가 진행됐다. 학부모 김모 씨(43·여)는 “운동회라기보다는 TV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4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올해 이벤트 전문업체에 운동회를 맡긴 전국의 초등학교는 587개 학교로 전체 10개 학교 중 1곳이다. 지난해는 전체 8.8%인 518개 학교가 이벤트 업체에 맡겨 ‘위탁운동회’를 진행했다. 서울은 지난해 14개 학교에서 올해 26개 학교로 늘었고, 전남은 46개 학교에서 77개 학교로 증가했다. 특히 울산은 전체 119개 학교 중 34개 학교가 올해 위탁운동회를 진행했다.

B초등학교 교감은 “교사가 운동회를 준비하면 수업결손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시간을 없애기보다는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A 초등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방과후 학원에 가야 해서 예전처럼 운동회를 미리 준비할 시간이 없어 업체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이벤트 업체는 흥미 위주로 운동회를 진행할 뿐이라 심신단련이라는 운동회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B초등학교 4학년 김모 군은 “다른 학교 친구들은 몇 주 전부터 학교에서 신나게 운동회를 준비했지만 우리는 운동회 날 하루만 시키는 대로 논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강충열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운동회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호흡하는 소중한 정서 발달의 시간”이라며 “학생 참여가 없는 흥미 위주의 운동회는 이런 교육적 목적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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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운동회#위탁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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