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가장 영토를 많이 확장한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19대 광개토태왕(375∼413).
얼마 전 막을 내린 TV 드라마나 위인전에서 태왕은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며 영토를 넓힌 최고의 왕으로 그려졌다. 그래서일까. 광개토태왕은 늘 갑옷에 칼을 차고 말을 탄 장군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정부가 지정한 표준 영정인 김기창 화백의 그림은 칼을 들고 갑옷에 투구를 쓴 장군상이고, 이종상 교수가 그린 광개토태왕 기록화도 용맹한 젊은 군주의 이미지다.
경기 구리시는 2002년 3월 교문동에 광개토태왕 동상을 세웠다. 태왕 동상이 만들어진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이었다. 높이 4.05m, 너비 2.7m의 청동 입상이다. 기단에는 한문으로 ‘국경을 넓히고 나라를 바르고 편안하게 다스린 어진 임금’이라는 의미의 ‘광개토경평안호태왕(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새겨져 있다.
이 동상의 특징은 태왕을 정복왕이 아닌 어진 성군의 형상으로 그렸다는 점. 약간 각진 얼굴에 짙은 눈썹, 날카로운 눈빛과 콧날을 가진 모습은 천하를 호령하던 30대의 태왕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갑옷을 벗고 소탈한 관복을 입고 칼 대신 오른손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까마귀 ‘삼족오’가 새겨진 알을 들었다. 두 팔은 활짝 벌려 당장이라도 백성을 품에 안을 자세다.
구리시는 “1990년 이후 아차산 일대에서 고구려의 유물이 대량 발견되면서 이를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우게 됐다”며 “늘 백성을 생각하는 성군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고증을 거쳐 두 팔을 벌린 형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미관광장에는 태왕의 동상과 함께 광개토태왕비도 나란히 서 있다. 태왕비는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시에 태왕릉과 함께 세워진 기념비다. 이 태왕비는 중국 현지의 원석 정탁본을 근거로 2008년 세워졌다. 원본과 똑같이 높이 6.39m, 너비 1.35∼2m, 무게 42t. 원본과 가장 유사한 색상, 질감을 가진 충남 보령산에서 청오석을 포천시 석공장으로 옮겨 와 몸체를 깎고 고구려의 건국 과정과 태왕의 활약상, 유훈 등 1802자의 글을 새겼다. 진본의 닳거나 깨진 부분까지도 있는 그대로 새겨 진본과 최대한 가까운 복제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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