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융합 시대… 잡스형 인재 배출 도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9일 03시 00분


■ 서울대 문·이과 폐지추진 반응

학계에서는 문·이과 구분의 폐지를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수년 전부터 학계와 경제계에 ‘융합’ ‘통섭’이 화두로 등장했고, 인문학과 과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스티브 잡스형 인재’가 각광받으면서 고교의 문·이과 칸막이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의 성향을 문과 혹은 이과로 못 박아 낯선 분야를 공부하길 꺼리게 되는 데다 사회에 나온 후에도 문·이과 출신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이과를 나누는 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뿐이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최근 본보 기획 ‘나는 유권자다’ 기고문(11월 13일자)에서 “지금 세상은 융합과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등학생들에게 세상의 절반만 선택하라고 테두리를 치는 것이다”며 대선후보들에게 바라는 공약으로 문·이과 구분 폐지를 제안했다.

문·이과 구분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문·이과의 경계를 풀면 당장 (각 학과에서) 만족스러운 학생을 뽑을 수는 없겠지만 1, 2년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지나면 고교 교육이 정상화되어 학업에 준비된 학생들이 입학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2010년 본보 칼럼에서 “요즘 대학마다 학문의 융합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학과 간의 장벽이 높고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며 “문과 전공 학생들은 최소한의 자연과학 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이과 전공 학생들은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사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도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 성공한 이유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이 기반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우리나라 교육의 문·이과 통합도 이런 관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밖에 오명 KAIST 이사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김영식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전공 교수,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등 학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문·이과 구분 폐지를 주장해왔다.

학계에서는 최근 몇 년간 여러 학문의 교류를 시도한 융합단과대학 및 융합학과, 자유전공학부를 활발하게 설립해왔다. 인하대 대학원 융합고고학전공을 총괄하는 남창희 교수(정치학)는 “고고학과 사학 등 인문학에 탄소연대 측정, 유전학, 질병학, 천문학 등 다양한 자연과학을 총동원해 새로운 학문적 성과를 내고 있다”며 “문·이과를 통합하면 학생들의 새로운 자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수학 물리학 등 기본적 지식의 깊이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에 비해 고교 수학 과학 교육의 수준이 낮아져 대학 입학 후 전공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늘어났으며, 이런 가운데 고교에서 인문학 교육을 늘릴 경우 상대적으로 수학과 과학에 소홀해질 가능성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서동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융합도 기본학문이 튼튼해야 가능한데, 기본학문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융합을 시도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문과생이 수학 물리학을 하기엔 장벽이 높아 대학생활이 괴로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문·이과 폐지#학문융합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