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한테 그런 걸 왜 물어보시죠?” “그거야 환자 상태에 따라 처방하는 거니까요.” “다른 데 알아보세요.” “뚜-뚜-.”
동아일보 취재팀은 급성상기도감염 환자에게 항생제를 많이 처방하는 의원 수십 곳에 전화를 걸었다. 이유를 알거나 해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귀찮다는 투였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항생제가 필요하다는 의사들의 주장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쓰지 않아도 되는 환자에게 처방하는 사례다. 지역별로 차이도 심하다. 의사에 따라 같은 병에 대한 처방이 오락가락한다는 얘기다.
○ 항생제 처방은 의사 마음?
취재팀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은 지역에 따라 일정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노인이 많은 시골이라고 해서 처방률이 높은 건 아니었다. 전북 전남 경남 지역의 경우 일부 시군구를 빼고는 20∼40%에 머물렀다. 반면 대도시인 서울의 강남구 압구정동(85.49%), 중구 만리동(86.07%)과 대전 대덕구 와동(86.94%)은 90%에 육박했다.
시도별 소득수준에 따른 차이도 거의 없었다. 서울 46.26%, 대구 48.13%, 울산 47.47%, 경북 47.32%, 강원 50.67%였다.
서울에서도 ‘부자 동네’인 강남(43.01%) 송파구(43.07%)보다 관악(39.36%) 구로구(39.83%)의 처방률이 낮았다. 항생제 처방이 전적으로 의사의 결정에 따라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사의 73.3%는 “어린이 감기 환자의 부모가 항생제 처방을 기대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항생제 처방을 요구한 부모는 2.2%밖에 되지 않았다.
일부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사 A 씨는 “3분 진료시간 안에 환자의 상태를 다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 짧은 시간에 40∼50명을 봐야 하는 만큼 일단 항생제를 처방하자고 생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 항생제 처방하면 빨리 치료될까?
의사들은 “국내 진료 환경이 항생제 처방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단순 감기인지 꼭 항생제를 처방해야 하는 질병인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지만 환자들은 빨리 효과 있는 처방을 하라고 요구한다는 말이다. 사흘 안에 낫게 하지 않으면 ‘돌팔이’ 소리를 듣는 판에 항생제든 뭐든 가릴 여지가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그러나 항생제는 단순 감기나 독감에는 효과가 없다. 엄중식 서울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기침이나 콧물이 생기고 목이 아파 병원을 찾는 상기도감염 환자의 70% 이상은 항생제가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감기는 100% 바이러스 질환. 목 안쪽(인후두)에 생기는 염증도 대부분 바이러스 질환이다. 항생제는 세균 감염에만 듣는다. 항생제를 써도 감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다. 의사들이 빨리 치료하려는 생각에 항생제를 지나치게 많이 처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항생제를 반드시 써야 할 때도 있다. 엄 교수는 “염증이 심각하고 목 앞을 만져서 림프샘이 부었다면 세균 감염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는 항생제 처방이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몸이 아프고 열이 날 때 항생제를 쓰느냐 마느냐는 의사의 판단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의사가 판단했으니 처방이 옳고 그르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 해외에선 항생제 줄이기 운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병의원의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은 46.02%였다. 2002년(73%)보다 많이 낮아졌지만 외국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외국의 연구를 보면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한 네덜란드의 항생제 처방률은 14%였다. 유럽연합(EU)이 15개국을 조사한 결과 가장 낮은 수치였다. EU는 2008년부터 ‘유럽 항생제 인식의 날’(매년 11월 18일)을 지정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EU 산하의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가 주도한다.
여기서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30여 개국이 각국의 실정에 맞게 개선책을 마련한다. 항생제는 감기나 독감에 효과가 없고, 항생제의 내성을 억제하는 일은 모두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이런 내용의 과학적인 근거가 되는 참고문헌은 홈페이지에 링크해 놓는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감기 같은 질병을 대상으로 항생제 처방지침을 만들어 의료계와 일반 국민에게 알려준다. 국내에서는 심평원이 병의원별 항생제 처방률을 홈페이지(www.hira.or.kr)에서 보여주지만 관련 지침은 아직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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