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3시경 전남 고흥군 도덕면 한 흙집. 주모 씨(60) 부부와 외손자(6)가 이불을 두 겹으로 덮고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며 잠을 자고 있었다. 15만7740원의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지난달 30일부터 전기가 끊겨 난방을 하지 못한 채였다. 주 씨 부부는 형편이 어려운 딸이 낳은 외손자를 호적에 올려 애지중지 키워왔다. 2009년까지 기초수급자로 지원을 받았지만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아 지원마저 중단됐다. 주 씨 부인(58)이 식당 설거지 등을 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
곤히 자던 외손자가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며 주 씨 부부를 깨웠다. 주 씨 부인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켰다. 이 초는 주 씨가 받은 일당 5만 원으로 전날 사온 6개 초 중 하나였다. 외손자가 요강에 소변을 해결하자 이들은 다시 잠들었다.
잠시 뒤 주 씨는 머리가 뜨겁다는 것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초가 쓰러지면서 불이 붙어 천장으로까지 불이 옮아붙어 있었다. 주 씨는 부인을 깨워 탈출하려 했지만 부인은 집을 지키기 위해 “내가 불을 꺼볼 테니 얼른 119에 신고하라”고 했다. 주 씨 동생 소유였던 이 흙집은 66m²(약 20평)로 좁았지만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주 씨 부부는 휴대전화가 없었고 집 전화는 요금미납으로 발신이 되지 않았다. 손자는 할머니와 함께 나가겠다며 버텼다. 2년 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절룩거리던 주 씨는 사력을 다해 5분을 걸어 70m 거리에 있는 친척집에 도착했다. 그러고 오전 3시 48분 119에 신고했다.
신고를 하고 돌아와 보니 흙집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주 씨는 부인과 외손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집 앞에서 가족 이름을 부르던 그의 앞에서 화마는 두 사람을 삼켜버렸다.
소방대원 20명이 오전 4시 12분 불길을 잡았지만 주 씨의 부인과 손자는 허물어진 흙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주 씨는 얼굴에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주 씨는 뒤늦게 부인과 손자가 숨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실신했다.
전남 고흥경찰서 관계자는 “주 씨가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방안에 산소가 공급돼 불길이 번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 씨의 딸은 “한전에서 전기를 끊어 냉장고는 물론이고 불조차 켤 수 없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한전 측은 최소한의 가전제품은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2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식을 통해 자세한 화재 원인을 파악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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