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보여행의 대명사로 불리는 ‘제주올레’ 코스가 마침내 완성됐다. 24일 오전 10시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제주해녀박물관. 제주올레 마지막 코스인 21코스 개장식이 열렸다. 21코스는 해녀박물관에서 구좌읍 종달리 해변까지 10.7km 이다. 이로써 제주 해변을 한 바퀴 도는 올레길 공사가 마무리됐다. 》
○ 마지막 올레 코스 걸어 보니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시작점을 출발하자 옛 봉수대인 자그만 동산이 나타났다. 구름 사이로 비친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마을 안길을 지나자 얼기설기 엮은 밭담이 제주의 농촌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거센 태풍이 몰아쳐도 흔들흔들 움직일 뿐 무너지지 않는 밭담에서 선조의 지혜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지역 특산품인 당근이 무르익고 무, 마늘이 지천으로 널렸다. 계절을 잊은 노란 유채꽃이 피었는가 하면 돌담에는 송악덩굴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메밀밭에서 재잘거리던 참새들은 인기척에 놀라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4km가량을 지날 즈음 본격적으로 바다 풍경이 펼쳐졌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바람 따라 누운 우묵사스레피에서 꽃향기가 진하게 퍼졌고 해안에는 보랏빛 갯쑥부쟁이가 무리지어 피었다.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에게 해녀와 어부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각시당’,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옛 포구가 정겹다. 저어새 등 희귀종의 쉼터인 철새도래지에서 쉬고 있던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물닭 등이 슬금슬금 달아났다.
이어서 나타난 해발 165m의 지미봉. 땅 끝이라는 뜻을 지닌 작은 화산체(오름)로 정상에 오르자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관이 펼쳐졌다. 성산일출봉, 우도, 철새도래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리꽃이 핀 한라산 자락이 손에 닿을 만큼 다가왔다. 지미봉을 내려와 해안에 다다르며 종점을 맞았다. 1코스(시흥초등교∼광치기해변)의 중간지점과 불과 10m가량 떨어졌다. 21코스를 마지막으로 제주올레 코스 개설은 대장정을 마감했다.
○ 제주올레 세계무대로
2007년 9월 9일 제주올레 1코스를 개장한 이후 5년 2개월여 만에 코스 개발을 완성했다. 21개 정규코스(350km)와 산간 및 섬 5개 코스 등 모두 26개 코스로 전체 거리는 425km에 이른다. 코스를 개발하는 데 탐사대원 3∼6명이 현지에 거주하며 길을 잇고, 오솔길을 새로 냈다. 해안, 오름, 목장, 곶자왈(용암이 흐른 요철지대에 형성된 자연림), 밭, 마을 안길, 시장 등의 지역을 꾸불꾸불하게 이었다.
올레는 큰 길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방언이었으나 지금은 도보여행 코스를 이르는 단어가 됐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뒤 고향인 제주에 코스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놀멍 걸으멍 쉬멍(놀면서 걸으며 쉬면서)’ 제주 속살과 만나는 것을 표방했다.
올레 등장으로 제주 관광은 생태 여행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7년 3000명에 불과했던 올레 탐방객은 지난해 109만 명에 이르는 등 폭발적으로 늘었다. 올레길 여성 피살 사건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혼자 또는 두서너 명이 배낭을 메고 며칠씩 걷는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올레코스마다 게스트하우스가 속속 들어섰고 지역주민들의 특산품 판매도 덩달아 늘었다.
코스 개설을 마친 제주올레는 세계무대로 나간다. 일본 규슈(九州)지역에 ‘올레’ 명칭을 사용한 4개 코스가 잇따라 개장하는 등 해외로 진출했다. 해외 유명 트레일(Trail)과 교류협력을 추진해 국제기구인 ‘월드 트레일 네트워크’를 창설할 계획이다. 이 국제기구는 제주올레를 본부로 해서 트레일의 조성과 유지 관리, 운영 시스템 등에 대해 토론하고 공동 발전 방안을 찾는다.
서 이사장은 “산티아고 길은 종교적 발상에서 시작한 길이지만 올레는 아름다운 자연에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지닌 길로 제주가 안겨준 위대한 선물이다. 속도에 치이고 일에 쫓겨 사는 이들에게 느림과 여유를 통해 휴식과 치유의 길이 되길 바란다. 올레코스 개설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세계와 소통하는 길로 나아가가 위해 다시 시작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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