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창고 3학년 임현우 군(18)의 고교 내신은 전체 9등급 중 4.3등급. 그럼에도 그는 2일 경희대 사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수능과 내신 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창의적체험활동 보고서 또는 포트폴리오, 서류, 면접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창의적체험활동’ 전형을 통해서였다. 2013학년도 경희대 서울캠퍼스의 이 전형에는 26명 모집에 544명이 몰려 약 2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쟁을 뚫은 임 군의 ‘무기’는 바로 한자 실력이었다.
○ 한자 공부하다 안면마비까지…
임 군은 한자에 통달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한자능력검정시험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각각 3개월, 4개월 만에 독학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올해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의 인권을 위해 애쓴 일본인 변호사의 삶을 담은 ‘우리변호사 포시 진치’라는 제목의 위인전을 대부분 한자로 쓰기도 했다.
그의 한자 사랑은 고1 때 국사 시간에 시작되었다. 사학자를 꿈꾸는 임 군이 국사 선생님에게 사학자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선생님은 “한자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한자와 역사에 빠진 임 군은 ‘내신 공부할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한자능력검정시험 공부에 얼마나 몰입했는지를 알게 되면 입이 쩍 벌어진다. 고1 때만 해도 ‘말 마(馬)’도 제대로 모르던 임 군은 고2 여름방학에 접어들면서 한자에 뜨겁게 빠져들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A4용지에 한자를 써댔다. 한자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하루에 볼펜 2개를 다 쓸 정도였다.
몸에 무리가 왔다. 한자능력검정시험을 2개월 앞둔 올해 7월, 시험 스트레스로 ‘특발성 안면신경마비’가 와 얼굴 왼쪽이 마비되기도 했다. 장시간 앉아있던 탓에 엉덩이가 짓물러 고름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의사의 만류에도 한자시험 공부를 하느라 치료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안면마비는 여전히 완치되지 못했다.
한자시험이 끝난 후에는 바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에 돌입했다. 임 군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라는 ‘산’을 넘지 못한다면 역사가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920페이지에 달하는 한국사시험 수험서를 하루 10장씩 외웠고 결국 자격증을 따냈다.
어릴 적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임 군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나는 ‘영웅’ 같은 존재를 꿈꾸었다. 그러다 보니 역사 속 실존했던 영웅들과 그들을 둘러싼 역사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 난징 대학살 때 25만 명이 넘는 중국인을 구한 독일인 기업가 욘 라베를 좋아한다고 했다.
○ 동북아시아의 최고 사학자를 꿈꾸며…
임 군이 쓴 위인전 ‘우리 변호사 포시 진치’의 주인공인 ‘포시 진치(후세 다쓰지)’도 욘 라베와 행적이 비슷하다. 한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도운 일본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임 군은 ‘조선을 위해 일생을 바친 후세 다쓰지’라는 책을 기본 재료로 삼은 뒤 인터넷, 후세 다쓰지 아들이 쓴 책, 각종 논문을 참고해 한 달 만에 A4용지 40장 분량의 위인전을 썼다.
임 군은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 공자의 ‘논어’, 마르크스의 ‘자본론’,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서적도 즐겨 읽는다.
임 군은 ‘동북아시아 최고의 사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옛날에 만들어진 쇠붙이나 비석 등에 새겨진 한자를 번역하고 연구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밝혀내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영신 기자 l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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