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0km. 대구와 베트남 도시 껀터 사이의 거리다. 기차와 비행기, 자동차를 갈아타며 꼬박 하루를 이동해야 한다. 이렇게 먼 길을 이은서 씨(25)가 나섰다. 원래 이름은 ‘원트이’였다. 베트남 출신. 한국인 민계원 씨(44)와 2006년 결혼하면서 한국에 왔다. 한국 국적은 지난해 얻었다. 남편과 함께하는 베트남 여행은 4년 만이다. 이 씨의 마음은 늘 고향을 향했지만 친정 나들이는 쉽지 않았다. 두 딸을 데리고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 집을 나선 시간은 14일 오전 9시. 3시간 전부터 일어나 짐을 챙겼다. KTX를 타고 서울역을 거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을 도와준 한국공항공사의 성시철 사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출국 기념행사가 끝나고 인천공항에 가니 오후 4시였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5시간이 넘어 호찌민 떤선녓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씨의 큰 오빠 원반유 씨(34)와 셋째 오빠 원반티 씨(30)의 모습이 보였다. 오후 11시. 여기서 승합차로 5시간을 다시 달렸다. 딸 혜송이(6)와 소미(4)는 깊은 잠에 빠졌다. 멀고 불편한 여행에 지친 아이들의 얼굴이 애처로웠다. 선물보다 예쁘게 보이려는 딸
집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교통수단을 놓고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남편은 해가 뜨면 배를 타고 들어가자고 했다. 이 씨는 고개를 저었다. 오토바이를 고집했다. 한시라도 빨리 어머니를 보고 싶어서.
결국 이 씨가 이겼다. 남편은 혜송이를, 이 씨는 소미를 안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이 씨의 두 오빠가 네 식구를 뒤에 태우고 출발했다. 오토바이 2대가 간신히 비켜가야 하는 시골길. 닭 우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 군불 때는 냄새를 뚫고 달렸다. 마침내 친정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였다.
집은 많이 변했다. 깨끗한 하늘색에 방이 3칸. 뇌졸중(뇌중풍)을 앓는 아버지 원반세 씨(55)가 장애인 판정을 받으면서 국가가 지어준 집이다.
들어서는 이 씨의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남편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더니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로는 지난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걷기도 힘들어한다.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그러니까 6년 전에 아버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왜 내 딸을 머나먼 한국으로 시집을 보내야 하나.” 젊은 시절에는 정육점을 하며 껀터 시를 주름잡았다던 아버지. 결혼을 반대하며 고집 부릴 때는 오빠들도 말리지 못했다.
이 씨는 속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번이 두 번째 친정 나들이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4년 전에 허겁지겁 찾았었다. 멀리 떠난 딸을 생각하다 아버지가 쓰러진 것 같다는 생각을 이 씨는 지울 수 없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방에 짐을 풀었다. 피로가 몰려온다. 열아홉 살 차이. 이 씨는 남편을 ‘오빠’나 ‘혜송 아빠’로 부른다.
공항에서 남편은 이 씨에게 핀잔을 줬다. 선물을 사와도 모자랄 판에 가방 하나가 모두 이 씨와 두 딸의 옷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이 씨가 말했다. “오빠. 선물도 좋지만, 예쁘게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야 어머니 마음이 편하잖아.”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인 어머니
이제야 오나. 저제야 오나. 해가 떠야 도착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잠을 잘 수 없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지만 오전 2시에 깼다.
아들 셋을 낳고 얻은 귀한 막내딸. 머나먼 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다. 딸은 어려운 집을 돕겠다며 열일곱 살 때부터 호찌민 시의 한국 공장을 다녔다. 겨울옷을 만드는 일이었다. 정말로 겨울이 있는 나라로 떠났다.
딸보다 열아홉 살이나 많은 사위. 그래도 풍족한 나라에 가면 더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이런 마음에서 보낸 딸을 본 지가 벌써 4년이다. 방에 붙여둔 딸의 가족사진을 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캄캄한 가운데서도 딸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방에 붙여둔 5장의 사진 속에는 모두 딸이 보인다.
오랜만에 찾아온 딸은 더 든든해졌다. 어머니가 모르는 사이, 억척스러운 한국 아줌마가 됐다. 남편이 쇄골을 다쳐 일을 못하면 집에서 소미를 등에 업고 부업을 했다고 들었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동안 식품가공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딸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하면서 어머니의 안부만 물었다. 어떻게 사는지는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다. 사위는 안경 공장을 운영한다면서 딸을 데려갔다. 몇 해 전 부도를 맞았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었다. 그래도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위안했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을 보러 나섰다. 16일 오전이었다. 팔짱을 끼고 장을 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딸은 한국에서 먹기 힘든 용과와 람부탄 같은 과일을 잔뜩 골랐다. 흥정은 어머니의 몫이다. 딸은 “이제는 이곳 물가를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열흘간의 일정이지만 오고가는 시간을 빼면 여드레. 시골마을에서의 평화로운 일상은 빠르게 지나갔다.
딸은 어머니의 눈매와 코를 쏙 빼닮았다. 딸을 만난 기분이 어떠냐는 말에 어머니 판홍한 씨(54)는 손가락을 하나 펴들었다. 이역만리로 딸을 시집보낸 어머니의 선문답.
답은 이랬다. “이렇게 얼굴 보니까 좋다는 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있다가 떠나가면 언제나 한 번 더 볼 수 있을지 벌써 걱정될 뿐이에요.”
말 안 통해도 즐거운 아이들
혜송이와 소미는 외갓집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혜송이만 생후 14개월일 때 한 번 다녀간 적이 있다. 이 씨 부부는 두 딸에게 미안할 뿐이다. 외가 식구의 정을 느끼게 해주지 못해서. 이 씨는 한국을 떠나기 전 걱정을 했다. 아이들이 외갓집이기 이전에 낯선 곳이라서.
베트남의 11월은 여전히 덥다. 우기가 지났지만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후덥지근하다. 친정에 도착한 15일,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갈래. 가서 ‘짱구’ 보고 싶어.”
초콜릿을 주면서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어머니가 나섰다. 외손녀 혜송이를 불러 앉히고는 돼지고기덮밥을 숟가락으로 한 수저 한 수저 떠먹였다.
4년 만에 보는 큰 손녀, 처음 보는 둘째 손녀. 말은 통하지 않지만 외할머니의 사랑은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 새벽에도 어머니는 혜송이를 제일 먼저 끌어안았다.
아이들도 외갓집 식구들의 정에 빨리 빠져들었다. 이틀이 지나자 혜송이와 소미는 여섯 살 난 외사촌 원티비와 잘 놀았다. 한국에서 갖고 간 소꿉놀이 세트와 인형을 보여주면서 이웃 아이들과도 즐겁게 어울렸다.
혜송이는 외할머니 집의 벽에 걸린 사진 속의 아기가 자신임을 몰랐다. 그래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은 알겠다고 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어린 소미 팬이었다. 불편한 몸으로도 소미를 쫓아다녔다. “아버지는 소미가 누군지도 잘 모를 텐데…. 혈육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에필로그
열흘이 금방 지나갔다.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이 씨. 베트남을 떠나는 22일 오후 공항에서만큼은 달랐다. 어머니가 공항까지 따라 나왔다. 이 씨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참았을까….
이 씨의 어머니 역시 건강이 요즘 많이 나빠졌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데 공항까지 따라왔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 이 씨는 눈물을 훔친다. 이런 이 씨를 보고 남편은 말을 잃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남편이 말을 건넸다. “당신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2년 뒤에 한 번 더 오자.” 이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또 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이들이 크니까, 베트남 올 돈으로 공부를 더 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한국공항공사의 도움(다문화가정 지원사업)으로 다녀왔지만….”
이 씨는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문학을 참 좋아했다. 텔레비전 드라마 만드는 게 꿈이었다. 은서라는 한국 이름도 드라마 ‘가을동화’ 주인공에게서 따왔다.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다. 두 딸만큼은 하고 싶은 공부 다 하고, 하고 싶은 일 다 하게 해주려고 한다.
남편도 아내의 마음을 안다. 남편은 26일부터 대구 인근 공단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한다. 베트남 갔다 온 뒤 악바리가 됐다고. 남편이 말한다. “애들 공부시키고 애기 엄마 친정도 다녀오려면 악바리처럼 일해야죠.”
껀터(베트남)=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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