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유출 5년 태안 “갈매기는 돌아왔지만, 사람은 입에 풀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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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4일 03시 00분


사고뒤 관광객 3분의 2 줄어
어획량도 예전에 비해 반토막… 주민들 아직도 발암 공포에
어민들 삼성본관 상경시위 “최소 5000억 기금 출연을”

충남 태안군 남면의 몽산포해수욕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문승일 씨가 2일 예약이 단 한 건뿐인 올해 12월 달력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12월 말까지도 예약이 거의 없다”며 “이렇게 장사가 안 되니 가게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충남 태안군 남면의 몽산포해수욕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문승일 씨가 2일 예약이 단 한 건뿐인 올해 12월 달력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12월 말까지도 예약이 거의 없다”며 “이렇게 장사가 안 되니 가게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2일 오후 2시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만리포해수욕장 M슈퍼. 갈매기들을 자식처럼 돌봐 ‘갈매기 할머니’라고 불리는 주인 김복자 할머니(70)는 기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숨부터 내쉬며 말했다.

“어디 손님이 있어야지. 기름 유출 전에 주말이면 150만 원어치 정도 팔았는데 요즘에는 30만 원어치도 팔기 어려워….”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5주년(7일)을 앞두고 동아일보 취재팀이 방문한 태안의 걱정은 지역경제뿐이 아니다. 그물에 걸리는 어종의 변화로 바닷속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 지 오래다.

○ 주민 건강 불안감 확산

3일 소원면 주민 A 씨에게 “그 동네에서 기름 사고 이후 암 발생이 많았다는데 요즘은 어떠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입을 떼지 못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이 동네 주민 630여 명(330여 가구) 가운데 15명가량이 암에 걸렸다는 주장은 2010년 초에 제기됐다. 태안군 환경보건센터도 역학조사에 나섰다. A 씨는 “주민 건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암 발생 사실을 알렸다가 ‘태안 관광을 망치려느냐’라는 항의에 시달렸다”라며 “하지만 주민들이 의료기관의 전수 조사를 바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군환경보건센터가 주민 1만 명을 대상으로 중장기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방제작업 참여 일수가 많을수록, 사고지역과 거주지가 가까울수록 호흡기 질환과 알레르기 고혈압 당뇨 우울 스트레스 정도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 때문에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것.

4월 건강검진을 받은 소원면 의항리 주민들은 위와 대장 등에서 용종이 많이 발견돼 긴장하기도 했다. 주민 지재돈 씨는 “같이 검진을 받으러 간 15명 가운데 6명에게서 용종이 발견돼 모두 놀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군환경보건센터 엄귀흠 역학팀장은 “환경과 질병의 관계는 장기간의 추적을 통해 규명할 수 있다”라며 기름 유출과 용종 발생의 직접 연관성을 부인했다.

태안의 해안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구름포, 모항항, 신두리 등지의 갯벌이나 바위 틈, 자갈밭 아래에서는 지금도 기름막과 작은 타르 찌꺼기가 발견된다. 어민들은 상대적으로 청정해역에서 자라는 굴이 줄고 바지락이 많이 번식한다며 생태계 변화를 걱정한다. 이에 대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 임운혁 박사는 “어종 변화는 유류 오염보다는 전체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 생태계 변화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지역경제 바닥

태안의 관광객은 5년 전에 비해 3분의 2가 줄었다. 안면도국제꽃박람회와 태안 살리기 운동에 힘입어 2009년과 2010년 다소 회복되는 듯했지만 행사가 끝나자 다시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어획량을 말해 주는 수산물 위판 실적은 1만4146t에서 7354t으로 반 토막 났다. 주력 산업의 곤두박질로 태안의 지역 경제는 바닥이다.

남면 신장리 몽산포해수욕장에서 M횟집을 운영하는 문승일 씨(46)는 12월 예약일이 13일 하루뿐인 달력을 가리키며 “장사가 하도 안 된다니 종친회에서 이날 하루 팔아 주겠다고 한다”라며 웃었다. 2007년 12월에는 하루에도 여러 건의 예약이 밀려 종업원 13명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지금은 2, 3명인 종업원으로도 한가하다. 문 씨는 당시 낚시꾼이 끊기자 18년 동안 운영했던 7.3t짜리 낚싯배를 팔아넘기고 6개월분의 손해배상금 5000만 원을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펀드)에 신청했다. 하지만 최근 그에게는 9만4000여 원을 주겠다는 통지가 날아들었을 뿐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주민들은 IOPC 펀드에 총 2조7753억 원의 보상을 청구했지만 올해 9월 말까지 받은 금액은 청구액의 6.5%에 불과한 1801억 원이다. 여수 씨프린스호 사고 때는 청구액의 47.4%를 받았다. 주민들은 해양연구원 등의 연구를 토대로 최소 5000억 원의 기금 출연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만리포에서 모텔을 운영하다 기름 사고로 손님이 끊겨 경매에 넘긴 뒤 막일을 한다는 최남우 씨(53)는 “사고 후 태안 주민 4명이 자살했지만 남아있는 사람 중에서도 유서 쓴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카지노든 공장이든 뭐든 들어와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해안 유류피해민 총연합회 회원 4500여 명(경찰 추산)은 3일 오전 11시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피해 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부분 어민인 집회 참가자들은 기름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태안 지역 주민들에 대한 책임 있는 피해 보상을 촉구했다. 집회는 별다른 충돌 없이 오후 5시경 끝났다.

2007년 당시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예인선이 충돌하면서 기름이 유출됐고 법원은 삼성의 손해배상책임을 56억 원으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어민 보상에 어려움이 예상되자 삼성은 이외 180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해 피해 어민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최소 5000억 원의 기금과 함께 삼성 측의 추가 ‘지역 공헌’을 요구하고 있다.

태안=지명훈 기자·이성호·하정민 기자 mhjee@donga.com
#태안#기름유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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