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학부모단체, 경기교육청에 황당한 요구
“율천고, 학생에게 평가강요” 도내 혁신교 모두 조사 요구
학교측 “희망자에 한해 실시”… 교육청 “교원평가 법적의무”
일부 학부모단체가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해 달라는 민원을 경기도교육청에 넣었다. 학생들에게 교원평가를 강행했다는 이유다. 교원평가는 법에 따라 학생 학부모 교원이 매년 하도록 돼 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내년부터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화하고, 이수호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혁신학교를 늘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교원평가를 포함한 정부의 교육정책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진보성향 학부모단체인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평학)’는 지난달 27일 경기도교육청에 율천고의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하라는 민원을 냈다. 보건실에 가는 학생을 강제로 데려가 교감 컴퓨터로 평가하도록 얘기하고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 교원 컴퓨터로 평가하게 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이 단체는 “교육현장을 살인적 경쟁으로 내모는 교원평가를 강행해 학생들의 인권을 탄압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율천고가 내년 3월부터 혁신학교로 지정되는 것을 즉각 철회하고 교장을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경기도 내 모든 혁신학교(154개교)를 조사해 (율천고처럼) 혁신학교의 기본 취지에 어긋나는 학교는 지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율천고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학생 만족도조사가 종료(11월 23일)되기 일주일 전까지 전체(415명) 학생의 2.4%(10명)밖에 하지 않아 일부 학생에게 참여 의사를 물었을 뿐 강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학교 교감은 “쉬는 시간에 만난 학생 10여 명에게 물었는데, 대부분 학부모의 만족도조사로 교원평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참여하겠다는 학생만을 상대로 조사했을 뿐 강제로 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원평가는 법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지만 추가 조사에도 결국 학생의 20% 정도밖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교육청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청 관계자는 “강제성이 있었는지는 조사해봐야겠지만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할 수는 없다. 교원평가는 법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민원은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진보성향 학부모단체, 교원단체와 정부 사이의 반목에서 비롯됐다. 혁신학교는 교장 교사 학생 학부모 간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므로 정부의 정책에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쉽게 반발할 수 있다.
율천고처럼 정부 정책 시행을 어려워하는 혁신학교의 교장·교감이 적지 않다. 서울 A중 교감은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인데 왜 교원평가를 하느냐는 교원들의 반발이 있었다. 꼭 해야 하는 건데…. 교감·교장이 큰 목소리를 내면 강요한다고 해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혁신학교가 확대되면 교원평가는 물론이고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같은 교육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는 학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계 관계자는 “혁신학교는 교육 과정이나 방법을 혁신하는 것이지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