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 건너온 ‘신상(신상품)’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푸른빛은 이전보다 화사해졌고 폴리머(polymer) 재질은 매끈했다. 홀로그램 속에 들어간 인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뒤집어 들여다보다 엄지와 검지로 비벼보기도 했다.
이내 고배율 현미경을 가져다 신상이 감춘 ‘비장의 무기’를 찾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온 지 한 달이 채 안 된 캐나다 20달러 지폐 신권은 지난달 21일 지구 반대편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연구센터를 흔들어 놨다. 일반인이라면 지폐에 적힌 ‘0’의 개수부터 확인하겠지만 화폐 디자이너들의 눈에는 예술성과 보안기술의 조화가 먼저 들어왔다. ‘황금(돈) 보기를 돌같이’ 하지 않고 ‘돈 보기를 작품같이’ 하는 사람들. 이들은 만들어지기 전에 가격부터 정해지는 특이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다. 》 2006년 5월 18일 새 1만 원권 도안이 발표됐다. 23년 만이었다. 초조함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의 남자가 한국은행 브리핑실 입구 쪽에 서 있었다. 브리핑이 끝나 자리를 뜨려던 그의 귀에 사람들의 대화가 들어왔다. “어때?” “밋밋한 게 심심한 통바지 같지 않아?”
‘통바지라….’ 1년 넘게 이 지폐를 도안하면서 생각하지 못한 반응에 어이없게 웃음이 났다.
그는 국내 최고의 화폐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김종희 조폐공사 디자인연구센터 팀장이었다. 2006년 5000원권을 시작으로 2009년 5만 원권까지 현재 유통 중인 모든 한국은행권 지폐 제작에 참여했다.
처음 ‘돈의 맛’을 알게 된 건 1998년. 한남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3년간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다 외환위기 직후 조폐공사로 자리를 옮겼다. 김 팀장은 입사 이듬해 대한민국 주민등록증 디자인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다니는 주민등록증이 바로 김 팀장의 작품이다.
기념주화, 상품권을 디자인하며 실력을 쌓던 그는 2002년부터 지폐 디자인 교육을 받았다. 그가 1만 원 신권 디자인을 맡은 것은 2005년의 일이다.
가로 14.8cm, 세로 6.8cm(1만 원권 기준)의 공간에 필요한 걸 모두 정확히 담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김 팀장은 2005년 1만 원권 뒷면에 새겨진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을 보기 위해 경북 영천시를 6번이나 다녀왔다. 5000원권에 오죽헌을 새길 때는 실제 창살 수까지 일일이 세어서 디자인에 반영했다.
“돈은 후대에 남겨주는 역사자료나 다름없어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죠. 다만 이건 비밀인데… 오죽헌 창살은 실제와 똑같지만 지붕의 기왓장 수는 다를 겁니다. 너무 많고 겹쳐 있어서 셀 수가 없더군요.(하하)”
지폐 제작기술의 핵심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은 ‘요판 작업’이다. 손으로 만졌을 때 인물 등 오돌토돌한 부분을 만드는 게 요판인쇄 기술이다. 인물의 모습은 전부 ‘선’만 이용해 다시 그려야 한다. 인쇄기술의 한계로 여러 색을 쓸 수 없어 색감, 명암을 선의 간격과 폭으로 나타낸다. 지폐 1종을 디자인할 때 요판 작업만 3, 4개월이 걸린다. 2005년에 개발된 새 1000원권의 퇴계 이황 수염은 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간격의 선으로 표현됐다.
지폐의 첫 여성 모델 신사임당은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도전이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신사임당의 ‘가채’를 재현하기 위해 가발을 사다가 마네킹에 씌우고, 그림 속 신사임당과 똑같이 가발을 땋아 머릿결을 한 가닥씩 선으로 그렸다.
“입사 초기에 30년 넘게 근무한 선배들 얼굴 한쪽이 일그러져 있어 이상하다 싶었죠. 하루 종일 한쪽 눈에 루페(원통형 확대경)를 끼고 칼질을 해대느라 변한 것이었어요. 2000년까지만 해도 조각담당 디자이너가 황동판에 조각칼로 선을 새겨 넣었거든요. 지금은 지폐 3배 크기 종이에 스케치 한 뒤 컴퓨터로 입력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작업이 한결 수월해졌죠.”
세종대왕은 성형 중독자?
화폐 디자인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은 화폐 디자이너에게 ‘상처’가 된다. 새 1만 원권이 발행된 2007년 1월 22일에도 뜻하지 않는 악재가 터졌다. 한 언론매체가 “1만 원권 뒷면에 그려진 혼천의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한국 지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이다.
김 팀장은 도안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았지만 의혹이 제기되자 재검토에 나섰다. 다행히 해결의 실마리는 지폐 안에 있었다. 1만 원권에 그려진 혼천의의 오른쪽 윗부분에는 돌출된 고리가 그려져 있었다. 이 부분이 그림 속 혼천의가 조선 천문학자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해줘 논란은 사그라졌다.
5000원권 지폐 뒷면의 ‘초충도’도 문제된 적이 있다. 지폐 안에 그려진 수박이 국내산이 아니라 아프리카산 외래종이라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원본과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잦아들었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을 달군 ‘세종대왕 성형설’ 같은 에피소드도 있다. 지폐가 바뀔 때마다 지폐 속 세종대왕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진 것을 성형수술에 빗댄 네티즌들의 패러디다. 실제로 옛 지폐들과 비교하면 눈코의 모양새가 조금씩 달라지며 시간이 흐를수록 세종대왕의 모습은 ‘꽃 중년’으로 변모해 왔다. 김 팀장은 5000원권, 1000원권의 과거 모습도 보여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조폐기술이 부족해 영국의 토머스 데 라 루(Thomas De La Rue)사에 맡겼어요. 요판에 얼굴을 옮기는 사람이 영국인이다 보니 서양인도 동양인도 아닌 어정쩡한 얼굴이 됐던 거죠. 특히 코는 조각 초보가 석고상을 만든 것처럼 어색했습니다. 1983년부터 한국에서 제작했지만 이후에도 요판작업을 누가하느냐에 따라 미세하게 차이가 납니다. 이전 화폐에서 세종대왕님이 50대였다면 새 화폐에서는 40대 정도로 보이니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이 밖에 1만 원권 앞면에 새겨진 용비어천가도 김 팀장과 동료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다. 기존 지폐뿐 아니라 새 지폐 도안의 중반 단계까지도 훈민정음은 포함되지 않았다. 세종대왕하면 ‘한글’이 떠오르지만 표현방식이 문제였다. 무턱대고 ‘가나다라’를 적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김 팀장 등은 ‘불휘 기픈’으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를 떠올렸다. 지폐 속에서 최대 업적인 한글과 함께하게 된 세종대왕이 화폐 디자이너들에게 또 한번 감사해야 할 대목이다.
이중섭 화가를 그려보는 게 꿈
국내 화폐 다자이너는 김 팀장을 포함해 총 15명. 모두 조폐공사 디자인연구팀 소속이다. 국내에서 돈을 만드는 곳이 조폐공사밖에 없으니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국내에서 직장을 옮길 일은 거의 없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권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로서의 고충도 적지 않다. 보안이 워낙 엄격해 연구실 밖으로 나서면 회사 일에 대해선 ‘꿀 먹은 벙어리’가 돼야 한다. “하루 종일 손바닥만한 지폐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사람의 마음까지 좁아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 팀장처럼 디자인을 전공한 부인마저도 그에게 ‘당신, 점점 더 쪼잔해진다’며 핀잔을 준다.
“돈을 만들다 보니 우리가 하는 일 중 세상에 알려지면 안되는 게 많아요. 은행권을 제작하는 기간에는 특히 심하죠. 처음에는 집사람도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다가 이젠 포기했어요. 이렇게 친구나 가족한테 매정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억울한데 화폐 위조사건이라도 터지면 경찰의 뒷조사 1순위가 화폐 디자이너입니다.”
신권 발행은 이미 몇 해 전 일단락됐지만 김 팀장은 여전히 분주하다. 기념주화나 상품권 디자인 등 부수적인 업무도 있지만 핵심은 화폐 제조기술 연구다. 몇 년, 수십 년 뒤에 나올 새 화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소 외국 화폐 연구 등을 통해 노하우를 쌓아둬야 뒤처지지 않는다.
화폐 디자이너로서 김 팀장은 소망이 하나 있다. “한국 지폐 속 인물들의 모자를 벗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처럼 화폐 속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갓이나 가채를 쓰고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즉, 500년 전 위인들로만 화폐가 채워진 나라가 없다는 말”이라는 설명이다. “이념적 갈등이 있었던 현대사의 굴곡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사회가 적어도 화폐에 대해선 다양성이 부족해요 스웨덴의 20크로나 지폐에는 1909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셀마 라겔뢰프가 그려져 있죠. 화폐에 넣고 싶은 사람 한 명만 추천하라고요? 전 이중섭 화가요.”
김 팀장은 “지폐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 과학을 대표하는 예술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흔히 돈을 ‘욕망의 덩어리’, 더 나아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돈도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마음이 좀 더 평온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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