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장비를 갖추지 않고는 산 오르기가 쉽지 않은 겨울이다. 칼바람 부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봄과 여름, 가을에 그토록 자주 찾았던 산이라도 겨울엔 나들이 목록에서 빼놓기 일쑤다. 하지만 대전 계족산은 다르다. 대덕구와 동구에 걸친 높이 420m의 나지막한 산으로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겨울 산행을 할 만하다. 계족산의 묘미는 산을 한 바퀴 둘러 평평하게 조성된 14.5km의 임도(林道)다. 봄여름과 가을에 맨발로 걷던 황톳길이다. 요즘처럼 눈이 쌓여 있어도 손쉽게 산행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 사연도 경이로움도 많은 곳
계족산(鷄足山)은 ‘닭다리산’ ‘봉황산’이라고도 불린다.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아서다.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나갔기 때문이라는 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군인이 봉황산을 계족산으로 격하시켰다는 설 등이다.
계족산에 올라 숲 속 음악회장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한 시간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동쪽으로 확 트인 대청호가 나타난다. 멀리 보이는 왼쪽은 충북 청원이고 오른쪽은 보은이다. 그 가운데쯤에 옛 대통령의 별장인 청남대도 자그마하게 보인다.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지만 3대(代)가 함께 걷더라도 부담이 없을 정도다. 남쪽으로 돌아서면 대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지막한 임도여서 산행 내내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군데군데 경관 좋은 곳에 정자가 마련돼 있다. 따스한 커피 한 잔을 즐기며 나무에 피어 있는 눈꽃을 감상해보자. 14.5km를 걷는 데 4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발길을 돌려 2시간 코스를 선택해도 괜찮다.
○ 백제성 원형 잘 보존
계족산성 입구에서 임도를 선택하지 않고 다소 욕심을 내 가파른 계족산성으로 방향을 틀어보자. 사적 355호인 계족산성은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1.5km 지점에 있다. 삼국시대에 축조됐다는 성벽 길이는 1037m, 높이는 7∼10.5m에 이른다. 대전에 있는 30여 개 백제성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성 안에는 봉화대, 우물과 저수지 터, 장수의 지휘소였던 장대지(將臺址)가 있다. 산성에선 동서남북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임도 곳곳에서 발견하는 자연설치미술의 작품 설명도 꼼꼼하게 읽어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심웅택 조각가의 에코힐링 기념공원, 석현 조각가의 가족상 등이 눈길을 끈다. ○ 따끈한 된장에 보리밥
계족산은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나들목에서 대전 방향으로 가다가 장동산림욕장 간판을 따라 15분 거리, 대전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택시로 30분 거리다.
산행을 마무리한 뒤 인근 식당에서 토속 음식으로 보양하면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털어낼 수 있다. 계족산 입구 산골보리밥(042-625-2758) 주인 김해선 씨(52·여)가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여 내는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계족산 서편 기슭 북경오리전문점 꽁뚜(042-483-9999)는 마치 최고급 커피숍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밖에 띠울석갈비(수자원공사 앞·042-627-4242)와 오리진흙구이 복조리가든(042-622-5292), 민물매운탕 전문 할머니네집(042-274-7107)도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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