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차가웠던 감방 안에서 꾹꾹 눌러썼던 편지. 간첩으로 몰려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을 구형받은 뒤 선고를 앞두고 절망감에 빠져 있던 재일동포 2세 김종태 씨(62·당시 26세)는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라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재판부에 최후진술서를 써서 보냈다. 한 줄 한 줄 진심을 담아 쓴 82쪽의 편지에도 불구하고 1976년 당시 법원은 김 씨에게 간첩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수사기록철에 묶여 깜깜한 창고 안에 처박혀 있던 그의 편지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24호 법정에서 판결문을 통해 공개됐다. 이날 재심 선고공판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최동렬)는 김 씨에게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씨는 증인석에 앉아 담담하게 재판장의 판결문 선고를 들었다.
“피고인은 무려 5년 10개월이라는 시간을 모국인 대한민국의 차가운 감옥에서 보내고 가석방돼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현재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영장도 없이 20일 가까이 중앙정보부 조사실에 불법 구금돼 온갖 고문과 협박을 당하며 허위자백을 해야 했던 피고인이 받았을 고통과, 법원에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하는 최후진술서를 보냈지만 중형이 선고돼 받았을 절망감을 생각하면 늦었지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히고 공적인 사죄를 할 필요가 있다.”
판결문을 읽는 형사합의25부 최동렬 부장판사의 목소리도 숙연함에 가득했다. 어느새 김 씨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어 재판부가 “그 시대 어느 누구의 공명도 얻지 못했던 그 작은 목소리를 판결문에 인용하고 무죄를 선고한다”며 36년 전 썼던 김 씨의 편지를 읽기 시작하자 변호인과 방청객에 앉아 있던 일본에서 함께 온 김 씨의 지인들까지 눈물을 흘렸다.
김 씨의 편지를 읽은 재판장은 이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사법부를 대표해 사과드립니다”라며 재판을 끝냈다.
이날 법정 밖에서 만난 김 씨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만든 국가가 원망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단 한 번도 우리나라를 원망해본 적 없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시절 ‘조선인학생회’라는 모임에 가입해 활동하며 “남북이 통일하기 위해서는 자주적 민주적 평화적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 등으로 간첩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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