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공부스타-시즌2]<22>‘번역 짱’ 연세대 창의인재전형으로 영어영문과 합격한 용인외고 정현정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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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1일 03시 00분


초등생 때 빠진 번역, 문학평론가 꿈 키웠죠


연세대 창의인재전형에 합격한 정현정(위) 양이 창의에세이에 그린 내용
연세대 창의인재전형에 합격한 정현정(위) 양이 창의에세이에 그린 내용
2004년 겨울.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경기 용인외고 3학년 정현정 양(18)은 ‘작가가 되고 싶어!’라는 영어동화를 읽다가 줄거리에 주목했다. 열두 살 소녀 나탈리가 익명으로 출판사에 자신이 쓴 소설을 투고했다가 작가가 된다는 내용.

‘나도 나탈리처럼 출판사에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을 투고해 볼까?’

스스로 번역한 ‘작가가 되고 싶어!’를 출판사에 우편으로 보낸 정 양은 2개월 뒤 출판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2년 뒤 정 양은 초등학교 6학년의 신분으로 번역본을 출간할 수 있었다. 정 양은 최근 2013학년도 연세대 수시 모집에서 창의인재 전형으로 영어영문학과에 합격했다. 이 전형은 지원자의 내신 성적을 전혀 보지 않고 창의성을 입증할 자료와 인터뷰, 창의에세이만으로 평가해 선발한다. 여기서 정 양은 900여 명의 지원자 중 가장 우수한 학생 4명을 올해 선정한 ‘우선선발’ 평가 대상자로 꼽힐 만큼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 영시 번역, 심층 독서로 이어지다

번역의 매력에 빠진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매일매일 영어동화책을 포함해 책 읽기를 즐겼던 정 양. 어느 날부터 그는 영어동화책의 내용을 우리말로 바꿔 컴퓨터로 옮겨 적는 일을 취미 삼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컴퓨터에 입력한 번역 문장들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보다 매끄러운 글로 고쳐 보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번역에 빠지게 됐다. 정 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영어도서 4권을 번역 출간했다. 습작으로 번역한 책은 10권이 넘는다. 놀랍게도 정 양은 영어학원에 다닌 적도, 번역을 배운 적도 없다.

번역에 관심을 두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서가 깊어졌다. 책의 내용을 더 심층적으로 알려면 관련 자료를 다방면으로 조사하면서 지식을 넓혀 나갈 수밖에 없었기에. 책에 실린 짤막한 동시를 번역하기 위해 한글로 번역된 영어 시, 팝송 가사의 번역본을 찾아 읽었다. 그 과정에서 피천득 시인이 번역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유럽 정형시)를 접하기도 했다. “영문 텍스트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은 창작의 일부였고 창의력을 기르고 생각이 뻗어 나갈 바탕이 됐답니다.”(정 양)

○ 영문 고전, 현대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싶어…

꾸준한 독서와 번역 과정에서 얻은 문학적 감수성과 언어 감각들은 그의 글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연세대 입시 면접관들은 정 양이 쓴 창의에세이를 보고 “스토리텔링을 잘했다”고 평가했다.

에세이에는 두 문제가 출제됐다. 그중 첫 번째 문제는 “‘두 선은 평행하다’라는 수학적 표현을 이용해 문학적 감성(시, 단편소설, 콩트, 만화 등)을 넣고 그림을 사용한 이야기를 만드시오”였다. 정 양이 쓴 에세이 내용은 이랬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행성이 있다. 그리고 행성에 사는 주인공이 있다. 그리고 행성을 내려다보는 북극성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투명한 행성에서 북위 30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친구를 보내달라”는 주인공의 기도에 북극성은 친구를 보내줬다. 투명한 행성에서 둘이 나란히 걷는 모습에 뿌듯해 했던 북극성은 다시 화가 났다. 분명 친구를 보내줬는데도 주인공은 끝까지 “북극성이 친구를 보내주지 않았다”고 불평했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일까. 북극성은 친구를 북위 30도가 아닌 남위 30도로 내려 보낸 것. 위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본 북극성의 입장에선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듯 보였지만, 주인공은 어떤 친구도 곁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둘은 함께 걷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각자 이루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정 양은 “평행한 두 직선은 만날 수 없지만, 각도에 따라 두 직선이 일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문학적 감수성과 수학적 표현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가 원하는 창의인재, 융합인재가 아닌가. 정 양의 꿈은 영문 고전을 현대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문학평론가가 되는 것이다. “영미 문화권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깊이 있게 공부해서 인문학적 지식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겸비한 ‘열린’ 문학평론가가 되고 싶어요.”(정 양)

글·사진 이영신 기자 lys@donga.com  

※‘공부스타 시즌2’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최하위권을 맴돌다 성적을 바짝 끌어올린 학생,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대학 입학사정관전형에 합격한 학생 등 자신만의 ‘필살기’를 가진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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