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사립대 교수가 한국환경공단 설계자문위원회 산하 설계심의분과위원으로 일하면서 특정 업체에 높은 점수를 줘 공사를 따내게 한 뒤 뇌물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항소심에서 한 명은 유죄, 한 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 서울고법의 두 재판부가 정반대 판단을 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한양석)는 지난해 2월 A업체로부터 1000만 원을 받은 지방 소재 사립대 교수 김모 씨(54)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최규홍)는 같은 업체에서 2000만 원을 받은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 김모 씨(52)에게 최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만 원,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환경공단이 발주한 공사에서 설계평가를 잘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인천지검 특수부에 적발됐다. 두 교수의 비리 내용이 똑같지만 법원은 ‘공무원 신분’을 따지는 법리 해석을 제각각 다르게 했다. 건설기술관리법은 ‘설계자문위원회의 위원’이 비리를 저질렀을 때 공무원으로 간주해 뇌물수수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뇌물죄는 공무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교수들의 입찰 비리를 막으려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을 두 재판부는 다르게 해석했다.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설계자문위원회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건 공단이 발주하는 대규모 공사에 입찰한 업체를 심사해 선정하는 일”이라며 “심사 업무가 심의위원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볼 수 있어 (뇌물죄로) 엄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심의위원이 ‘자문위원회의 위원’에 포함된다는 근거가 없으므로 뇌물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혐의 내용이 아니라 기본적인 법규정 해석을 놓고 1심도 아닌 항소심 재판부가 다른 해석을 한다면 어떻게 국민이 법원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같은 비리연루 혐의로 서울고법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사립대 교수 3명 중 2명은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성기문)가 28일 선고를 앞두고 있고, 다른 1명은 앞서 무죄를 선고한 형사1부에서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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