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학생들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선생님들이 더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1등을 해야 한다는 각오입니다.”
올해 동아일보 고교평가에서 시도별 1위에 오른 학교의 교장 교감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좌담회에서다. 광주를 제외한 16개 시도의 1등 학교 교장 교감이 한자리에 모여 고교평가가 학교현장에 미친 영향과 1등 비결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 일반고에 자신감 줘
교장들은 동아일보가 입시정보업체인 ㈜하늘교육과 함께 2년째 실시한 고교평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돈희 서울 숙명여고 교장(여)은 “학력수준뿐 아니라 교육여건과 평판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입을 열었다. 임운형 대구 대륜고 교장도 “최근 학교평가가 학력만 중시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동아일보 고교평가는 다른 요소도 고려해 1등의 자부심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준화 지역에서 일반고가 성공하기가 어려운데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며 뿌듯해했다. “올해 개교 109년째인데, 1등을 한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비평준화 지역은 좋은 학생이 많아서 평준화 학교가 절대 이길 수 없는 구조였다.”(이창균 전남 영흥고 교장) “평준화 지역 일반고에서는 10∼20%만 공부하고 나머지는 들러리가 되기 십상이다. 학생들도 교사들도 관심이 없지만 이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김경희 부산 장안제일고 교장)
참석자들은 고교평가가 학력 외에 교육여건과 평판도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데 큰 의미를 뒀다. 이종혁 인천 명신여고 교장은 “인천에 최근 특목고가 많이 생겼다. 이번 결과를 보고 일부 학교가 어떻게 명신여고가 1위냐며 불평했지만 일반고에 큰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일반고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정석화 경기 김포고 교장은 “일반계고는 과학고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학생을 가르치기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익근 울산 학성고 교장은 “상위권 학생은 특목고나 자율고로 빠지고, 일반고에는 특성화고에 넣었다 떨어진 학생까지 오니 수준 차가 엄청나다”고 했다.
○ 교사들의 열정이 비법
1등의 비결은 무엇일까. 손진철 충북 한국교원대부고 교감은 교사의 헌신을, 박영환 충남 천안고 교장은 교사의 열정을 꼽았다. 다른 교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가 바뀌지 않으면 학생과 학교는 절대 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들 학교의 교사들은 귀찮은 일에도 적극 나선다. 성적별로 학생을 나눠 방과 후에 보충학습을 시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전북 완산고는 학기 초에 기초학력미달 학생반을 따로 만들어 매일 저녁식사 뒤 교사들이 보충학습을 시켰다. ‘100일 작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기대 교장은 “누가 강제로 시켜 하는 게 아니다. 희망자를 뽑아 영어 수학을 가르친 게 지난해 2위에서 올해 1위로 올라온 비결이다.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과목별 향상도 100대 학교에도 포함됐다”고 했다.
경북 구미고 교사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항상 학습실에 감독관으로 들어간다. 이양하 교감은 “궁금한 게 있으면 학생들이 언제든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강원도는 교육감이 학생인권 보장 차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로 시키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곳. 그런데도 춘천고 교사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교과부에 창의경영학교, 자율학교, 교과교실제 학교를 신청했다. 현종진 교장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많지만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교사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학교 선호도 높아져
1등 학교는 인성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경남 마산제일고는 졸업생들이 “고등학교 때보다 군생활이 더 편하다”고 할 정도로 생활 지도를 엄격히 한다. 머리 길이는 짧게, 복장은 깔끔하게 하고 휴대전화는 못 가져오게 한다.
박근제 교장은 “학생을 풀어주면 교사는 편하겠지만, 질서가 바로잡혀야 공부도 잘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울산 학성고는 경찰 출신 동문을 1, 2학년의 명예담임으로 지정했다. 문제 학생을 특별지도하고 상담을 하면서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이 있다.
동아일보 고교평가가 학교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고 교장들은 입을 모았다. 오승식 제주 서귀포여고 교장은 “공립인 데다 시골에 있어 선호도가 떨어졌는데, 2년 연속 1위를 하다보니 올해는 상위권 학생의 지원이 엄청 늘었다. 동문회의 재정 지원 규모도 커졌다”고 말했다. 송인옥 세종 성남고 교장은 “교육여건이 어려워 동문회에 장학회 결성을 부탁했는데 잘 안 됐었다. 이번에 1위를 하면서 동문들이 8일에 학교와 장학협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1등 학교들은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노재근 대전 보문고 교장은 “2년 연속 1위를 했는데,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하는 자율고에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년에는 신입생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눠 맞춤형 교육을 하려 한다”고 했다. 역시 대구에서 2년 연속 1위를 기록한 대륜고의 임운형 교장은 “선호도가 높아져 전입생을 받지 못할 정도다. 앞으로도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게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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