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골프 리모컨 조작해 2억 사기도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5일 03시 00분


9홀 최대 4000만원 판돈… 14명 붙잡아 5명 구속

부산에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는 강모 씨(54)는 2010년 중순 단골손님 가운데 박모 씨(48)가 재력가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하면 돈을 뜯어낼까 궁리했다. 고민 끝에 강 씨가 택한 방법은 내기 스크린골프와 마약류를 탄 음료를 먹이는 것. 박 씨의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공을 치는 순간 컴퓨터를 조작해 공을 엉뚱한 곳으로 보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강 씨의 계획은 엉뚱한 곳에서 ‘OB(out of bounds)’가 났다. 조작 시 누른 키보드에서 계속 ‘삑삑’ 하는 큰 소리가 난 것.

강 씨는 궁리 끝에 사기도박 기술자 허모 씨(68)에게 키보드 대신 소리 없이 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리모컨을 개발해 달라고 부탁했다. 허 씨는 마침 공학석사인 아들(39)에게 “무소음 리모컨을 개발하라”고 시켰다.

리모컨이 만들어지자 강 씨는 지난해 3월 박 씨를 다시 자신의 스크린골프장으로 불러 내기 골프를 쳤다. 강 씨는 공범 김모 씨(57) 등과 함께 처음 몇 경기는 1인당 30만∼40만 원씩 잃어줬다. 그리고 며칠 뒤 “복수전을 하자”며 다시 박 씨를 불렀다. 2차전에서 박 씨가 드라이브 채를 들고 백스윙을 하는 순간 강 씨는 무소음 리모컨을 눌러 골프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보냈다. 박 씨는 9홀에서 몇 차례 OB를 내야 했다. 퍼팅을 할 때도 리모컨을 눌러 공을 4, 5m 더 멀리 보냈다. 평소 투퍼팅 내에서 공을 홀에 넣던 박 씨가 스리퍼팅, 포퍼팅을 밥 먹듯 했다.

오기가 생긴 박 씨는 “9홀에 1인당 300만 원을 걸자”는 이들의 제안에 밤샘 골프를 쳐 6600만 원을 잃기도 했다. 스크린골프 평균 타수가 5언더파인 박 씨가 지난해 3∼9월 9차례 경기에서 잃은 돈은 모두 1억820만 원. 박 씨는 검찰에서 “사기골프인지 전혀 눈치를 못 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김모 씨(48)도 올 2, 3월 두 차례 스크린골프 경기에서 강 씨 일당에게 걸려 1억5200만 원을 날렸다. 김 씨는 9홀 경기에서 많게는 4000만 원까지 판돈을 걸었다.

부산지검 강력부는 14일 강 씨 등 사기도박에 가담한 14명을 적발해 5명을 구속 기소하고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기 스크린골프는 아마 국내에서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스크린골프#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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