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는 강모 씨(54)는 2010년 중순 단골손님 가운데 박모 씨(48)가 재력가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하면 돈을 뜯어낼까 궁리했다. 고민 끝에 강 씨가 택한 방법은 내기 스크린골프와 마약류를 탄 음료를 먹이는 것. 박 씨의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공을 치는 순간 컴퓨터를 조작해 공을 엉뚱한 곳으로 보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강 씨의 계획은 엉뚱한 곳에서 ‘OB(out of bounds)’가 났다. 조작 시 누른 키보드에서 계속 ‘삑삑’ 하는 큰 소리가 난 것.
강 씨는 궁리 끝에 사기도박 기술자 허모 씨(68)에게 키보드 대신 소리 없이 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리모컨을 개발해 달라고 부탁했다. 허 씨는 마침 공학석사인 아들(39)에게 “무소음 리모컨을 개발하라”고 시켰다.
리모컨이 만들어지자 강 씨는 지난해 3월 박 씨를 다시 자신의 스크린골프장으로 불러 내기 골프를 쳤다. 강 씨는 공범 김모 씨(57) 등과 함께 처음 몇 경기는 1인당 30만∼40만 원씩 잃어줬다. 그리고 며칠 뒤 “복수전을 하자”며 다시 박 씨를 불렀다. 2차전에서 박 씨가 드라이브 채를 들고 백스윙을 하는 순간 강 씨는 무소음 리모컨을 눌러 골프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보냈다. 박 씨는 9홀에서 몇 차례 OB를 내야 했다. 퍼팅을 할 때도 리모컨을 눌러 공을 4, 5m 더 멀리 보냈다. 평소 투퍼팅 내에서 공을 홀에 넣던 박 씨가 스리퍼팅, 포퍼팅을 밥 먹듯 했다.
오기가 생긴 박 씨는 “9홀에 1인당 300만 원을 걸자”는 이들의 제안에 밤샘 골프를 쳐 6600만 원을 잃기도 했다. 스크린골프 평균 타수가 5언더파인 박 씨가 지난해 3∼9월 9차례 경기에서 잃은 돈은 모두 1억820만 원. 박 씨는 검찰에서 “사기골프인지 전혀 눈치를 못 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김모 씨(48)도 올 2, 3월 두 차례 스크린골프 경기에서 강 씨 일당에게 걸려 1억5200만 원을 날렸다. 김 씨는 9홀 경기에서 많게는 4000만 원까지 판돈을 걸었다.
부산지검 강력부는 14일 강 씨 등 사기도박에 가담한 14명을 적발해 5명을 구속 기소하고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기 스크린골프는 아마 국내에서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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