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동구 ‘살곶이 남매상’
“발가벗은 모습 추워 보여”… 4년전 한 주부가 시작, 주민들이 철마다 옷 갈아입혀
“누가 또 새 옷을 선물했네.”
서울 청계천과 중랑천 합류 지점에 있는 성동구 사근동 살곶이조각공원에서는 철마다 아주 특별한 ‘패션쇼’가 열린다. ‘살곶이 남매상’으로 불리는 동상이 계절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 남매는 명절에는 한복, 크리스마스에는 산타옷 등으로 갈아입고 주민들에게 미소를 선사한다.
‘살곶이 남매상’의 원래 정식 이름은 오원영 작가의 ‘동심의 여행’으로, 2008년 10월 세워진 높이 70cm의 청동상이다. 물고기 등을 타고 여행하는 아이들을 형상화했다. 어린 남자 아이는 옷을 벗은 모습이다. 오 작가는 “제작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울 때여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며 “늦게 얻은 소중한 아들(당시 3세)을 모델로 해 누나와 남동생의 남매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희망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싶다”던 작가의 의도는 생각지 않은 곳에서 발현됐다. 2008년 11월 말 근처 공원을 자주 찾던 주부 김모 씨(50)가 20여 년 동안 재봉일을 해 온 솜씨를 살려 남매상에 딱 맞는 체크무늬 커플 티를 만들어 입혀준 것.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까. 김 씨는 당시 이유를 묻는 성동구 직원에게 “그냥 추워 보여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올해만큼 매섭던, 경제 한파로 마음이 더 추웠던 그해 겨울 김 씨의 따뜻한 마음은 계속 번져나갔다. 이후 이름 모를 시민들이 서너 차례 더 옷을 갈아입혔다. 공원을 찾은 주민들은 귀여운 동네 꼬마를 만난 듯 머리를 쓰다듬고 양볼을 비볐다.
지금은 인근 한양여대 의상디자인과 패션동아리 ‘패크레’ 학생들이 예쁜 옷을 철마다 갈아입힌다. 봄에는 화사하고 고운 꽃무늬 의상으로 단장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반팔 차림으로 변신한다. 비옷으로 가을을 적시는 비를 막고, 따뜻한 코트로 매서운 겨울 강바람을 견딘다. 광복절에는 유관순 누나처럼 광목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수능 전인 가을에는 교복을 입고 언니 오빠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름 없는 남매였지만 주민들의 공모로 누나는 ‘여울이’, 동생은 ‘가람이’라는 예쁜 이름도 얻었다. ‘여울’은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가람’은 강의 옛말이다.
오 작가는 “동상을 세우고 시간이 지나면 때타고 녹슬기 마련인데 주민들에 의해 생명혼이 불어넣어진 느낌”이라며 “남매상의 선물이 널리 퍼져 따뜻하고 훈훈한 겨울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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