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가정폭력이나 살인, 성폭행 등이 발생하고 있는 위급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집주인이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경찰청은 16일 이 같은 내용의 ‘위급상황 시 가택출입·확인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하달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지침은 살인, 성폭행 등 강력 범죄 신고가 접수돼 인명과 재산 피해를 볼 위험이 높고 위험발생 장소가 소수의 건물로 압축될 경우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강제 진입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내부를 둘러보다 범죄 흔적을 포착했을 땐 별도의 영장 없이 압수수색이나 피의자 수사도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온 경우는 남편이 출입문을 열지 않더라도 강제 진입해 조사할 수 있다. 피해 여성이 신고하고도 보복이 무서워 적극적인 구제요청을 하지 못하는 실정을 고려한 것이다.
기존에는 집주인이 거부하면 현행범이 아닌 한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거나 현장을 조사할 권한이 없었다. 4월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 당시 경찰은 범인 오원춘의 옆집을 수상하게 보고 탐문하려 했지만 집주인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아 1시간 반가량을 허비했다. 얼마 뒤 발생한 평택 여대생 성폭행 사건 때는 경찰이 피해 여성의 위치를 파악해 94가구를 특정하고 탐문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어 내부를 확인하지 않은 12가구 중 한 곳에서 범행이 발생했다. 경찰은 “미온적 대처로 소중한 인명이 더이상 희생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예방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은 가택 진입에 대한 동의를 먼저 구하고 필요한 범위에서만 강제진입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강제 진입이 가능한 요건도 △살인, 강간 등 중범죄이거나 △용의자가 무기를 소지했을 가능성이 있고 △신속히 진입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위험을 피하기 어려운 경우 등으로 한정했다.
경찰은 당초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해 긴급출입 및 조사권을 확보하려 했지만 “영장주의에 위배된다”는 법무부의 반대로 좌초되자 기존 법규를 재해석해 이 같은 지침을 만들었다. 아직 명쾌한 법적 뒷받침이 없는 내부 지침인 셈이다. 이 때문에 공권력 오남용에 따른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비판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현장 경찰관들에게 적극 대응을 주문하고 개별 사안별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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