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12일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중학교 1학년생의 중간·기말고사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가장 앞세웠다. 보수 이미지를 흐리지 않으면서도 시대를 앞서 가는 공약이란 자체 평가를 내린 후였다.
정책 관련 공약이 예전보다 적은 선거라서 그랬는지 많은 관심을 끌었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시험을 보기 싫어 문 교육감에게 투표하라고 부모를 설득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논란은 교육감 선거가 끝난 뒤 뜨거워졌다. 공약 실현 여부를 두고 일부 언론과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팽배했다. 이를 의식한 듯 문 교육감도 대외적으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21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선 중1 시험 폐지 시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교육감 측근 A 씨는 “공약의 파괴력이 클 줄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일 거라곤 예상 못했다. 사실 이번 임기 동안엔 여건만 조성할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문 교육감은 재선 이후 본격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던 문 교육감이 ‘임기 내 추진’으로 방향을 바꾼 이유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여론이 우호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교육감 측근 B 씨는 “투표 며칠 전 이상면 후보가 사퇴한 뒤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중1 시험 폐지와 관련된 여론을 진지하게 지켜봤다”라고 전했다. 그 결과 반응이 좋다는 평가를 내렸고, 임기 내 추진으로 전략을 수정키로 했다. B 씨는 “씨앗 뿌리기 수준을 넘어 수확까지 해보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년 반 뒤 재선을 노리는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거란 계산도 있다. 한 교육계 원로 인사는 “공약을 이행하면 임기 내 주요 성과물로 내세울 수 있다. 완벽하게 이행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확대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새로 걸 수 있다. 일단 공약을 이행하고 보는 게 선거 운동에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지원 약속은 자신감을 줬다는 평가다. 진보좌파인 전임 곽노현 교육감은 사안마다 정부와 잡음을 빚었다. 보수우파인 문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란 예상은 이미 나왔다.
박 당선인까지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자 교육감이 본격 공약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중1 시험 폐지 정책은 교육감의 힘만으론 어렵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협조하에 훈령부터 고쳐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힘을 실어 주겠다는 한마디는 천군만마의 효과를 낸다는 분석이다.
중1 시험 폐지 과정에서 예상되는 난관도 적지 않다. 서울 서초구의 A중학교 교장은 “시험을 안 보면 애들이 교사를 존중하고 교과 과정에 애착을 보이겠느냐.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라고 우려했다. 일부 학부모 사이에선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문 교육감 측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지는 않겠다. 현장부터 찾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설득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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