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류훈진 씨(46·사진)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수속을 마쳤다. 밝은 목소리였다. 그는 크리스마스 하루 동안 금식한 뒤 26일 오전 8시에 얼굴도 모르는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하기 위해 수술대에 오른다.
“크리스마스 선물 드리는 기분으로 장기 기증을 실천하게 돼서 좋아요.”
류 씨는 “빨리 수술 일정을 잡자고 내가 보챘는데 마침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 가장 빠른 날이었다”며 “크리스마스를 더욱 기쁘게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가 신장 기증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산악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만성신부전 환자 때문이었다. “본인이 건강해야 신장을 기증 받을 수 있다며 일요일마다 꼭 산에 오시더라고요. 산 입구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더 못 가시는데도 말이에요. 그 모습을 보고 기증 결심을 굳혔죠.”
그는 올해 2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아 신장 기증 의사를 밝혔고 3월부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부인과 열네 살 된 딸도 “좋은 일이니 뜻대로 하라”며 응원해줬다. 그리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등록되어 있는 이식 대기자 순서에 따라 15년 동안 만성신부전을 앓아 온 동갑내기 이모 씨(46)가 이식 대상자로 연결됐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류 씨는 굳이 누군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 알면 부담스러운데 그분과 뭣 하러 만나요. 지금까지 고통 받았으니 하루 빨리 건강을 되찾아 저처럼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1990년부터 서울에서 전기시설 기술자로 일해 온 류 씨는 주로 병원의 전기설비 관리를 맡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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