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전자발찌를 차야 하지만 소급적용 논란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됐던 약 2500명의 악성 성범죄자가 전자발찌를 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법은 제도 도입 이전에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자에게도 전자발찌를 채울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위헌소송이 제기된 이후 2년 4개월 동안 이들에게 발찌를 채우지 못했다. 소급적용 대상 전과자들은 이 기간에 100건이 넘는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27일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리자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 재판관 9명 중 4명이 합헌 결정
헌재가 이날 합헌 결정을 내린 법조항은 전자발찌가 도입된 2008년 9월 이전 1심 판결을 선고받았거나 형 종료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검사가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부칙 2조 1항이다. 검찰은 이 요건을 갖춘 성범죄자 중 2회 이상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거나 미성년자 또는 장애인을 성폭행한 악성 범죄자를 선별해 전자발찌 소급적용을 청구한다. 국회가 2010년 7월 김길태 김수철 사건 등을 계기로 재범 위험이 높은 성범죄자에겐 전자발찌를 소급적용하기로 합의해 신설된 조항이다.
하지만 청주지법 충주지원이 2010년 8월 “죄형법정주의와 형벌불소급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여부를 따져 달라고 요청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합헌 4, 일부위헌 4, 위헌 1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려면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에 찬성해야 하므로 가까스로 합헌 결정이 난 셈이다.
헌재는 “전자발찌 부착은 성범죄자의 행동 자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어서 형벌이 아닌 보안처분으로 봐야 하는데 보안처분은 소급적용 금지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여성과 아동을 보호한다는 매우 중요한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므로 성범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도가 과하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강국 박한철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이미 형사처벌이 종료된 사람에게 보안처분을 소급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일부위헌 의견을 밝혔고, 송두환 재판관은 “전자발찌 부착은 형벌의 성격을 갖는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 성범죄자 2500여 명 전자발찌 찬다
헌재 결정에 따라 출소 후 자유롭게 활보했던 소급 대상 성범죄자들이 무더기로 전자발찌를 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선 법원은 2010년 8월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제기되자 “헌재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며 이들의 전자발찌 부착 여부에 대한 판단을 미뤄 왔다.
올 8월 21일 경기 수원시에서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난동을 부려 1명을 살해하고 4명을 다치게 한 강모 씨(39)는 법원의 이 같은 판단 보류 때문에 범행 때까지 전자발찌를 차지 않았다. 강 씨처럼 소급적용이 원칙대로 적용돼 전자발찌를 미리 채웠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재범 사례는 2010년 8∼12월 넉 달 동안에만 19건에 이른다. 법원 판단이 유보됐던 2년 4개월로 환산하면 재범 건수는 130여 건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검찰이 전자발찌 소급 부착명령을 청구한 건수는 2785건이고 법원은 이 중 2114건에 대해 결정을 유보했다. 법원이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 전 부착 결정을 내린 비율이 88.9%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들 중 1800명 이상이 전자발찌를 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출소 예정자에 대해선 법원에 소급적용 청구를 하지 않았는데 이들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6개월 이내 출소할 예정자만도 650여 명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는 1040명(올해 12월 기준)이며 여기에 약 2500명이 새로 전자발찌를 차게 되는 것이다.
법무부는 전자발찌 부착자가 2.5배가량 늘면 보호관찰 인력의 한계로 관리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 감독 인원은 102명으로 소요 인력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금도 감독 인력이 부족한데 관리 대상이 2배 이상 갑자기 늘게 됐다”며 “전담 보호관찰관이 시급히 증원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적극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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