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이 사람]5·18백서 발간 앞두고 사퇴한 민주유공자유족회 정수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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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31일 03시 00분


“세월에 묻혀가는 80년 광주… 5월 정신 후손에 물려주고파”

정수만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66·사진)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둘째 동생(30세)을 잃었다. 인쇄업을 하던 그는 이때부터 5·18 진상규명과 피해 보상, 책임자 처벌을 위해 ‘30년 인생’을 바쳤다. 5·18 관련 단체들이 이합집산할 때 그는 20년 넘게 유족회를 지키며 5·18특별법과 국가기념일 제정을 이끌어냈다.

‘5·18 산증인’인 정 회장이 최근 유족회장직을 내려놓았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필생의 작업인 ‘5·18 백서’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5·18 백서는 5·18 관련자 4700여 명에 대한 기록이자 ‘80년 광주의 역사’다. 정 회장이 5·18 자료 수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94년. ‘민주·희생·인권’의 ‘5월정신’이 시간이 흐를수록 엷어져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료를 정리해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수록하는 데이터베이스(DB)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자료 확보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1988년 11월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특전사 전투상보, 2군 상황일지, 계엄상황일지, 20사단 충정작전, 육군 작전상황일지 등 5·18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일부 공개됐다. 그는 이를 토대로 추가 자료를 얻기 위해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복사를 했다. 병원, 행정기관 등에서 당시 응급일지와 검시(檢屍)자료를 찾았다. 독일의 인권운동가가 상당한 양의 5·18 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97년 1월 자비로 독일을 찾았고, 이듬해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를 방문하기도 했다. 5·18 당시 사망자나 부상자 실태는 보상자료를 토대로 정리할 수 있었지만 행방불명자와 부상 후 사망자들의 상황은 자료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어 당사자나 가족들을 찾아 직접 증언을 들어야 했다.

자료를 분석 정리하면서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희생자가 당초 정부가 발표한 154명이 아니라 사망자만 166명, 부상 후 사망자는 375명, 실종자 65명 등 모두 606명에 이른다는 점, 5·18 피해자 30여 명이 계엄당국에서 풀려났다가 다시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항거한 윤상원 씨가 칼에 찔려 숨졌고 귀가 하던 여고생과 회사원 등 3명이 계엄군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도 밝혀냈다.

정 회장이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는 모두 30여만 쪽으로 300쪽 분량의 책 1000권은 족히 만들고도 남는 양이다. 그는 내년에 자료 정리를 마무리한 뒤 백서를 발간할 방침이다. 정 회장은 지인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신념으로 이 작업을 해냈다고 말해왔다.

정춘식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사무총장(68)은 “유족회 이사들이 사퇴를 만류했지만 정 회장이 ‘너무나 많은 짐을 혼자 져 왔다. 이제는 내려놓고 쉬고 싶다’고 해 그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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