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인근 반포지구대. 터미널의 한 편의점에서 3500원짜리 육포 2개를 훔치다 붙잡혀 온 A 씨(59·여)가 두 손을 싹싹 빌며 점주 B 씨에게 선처를 구했다. B 씨는 “육포 값 30배를 내놓지 않으면 절대 합의를 못 해준다”고 잘라 말했다. 남루한 행색의 A 씨는 ‘돈 벌어 오겠다’며 상경한 아들을 보러 충남 당진에서 차비만 간신히 마련해 올라왔다. 아들을 만나긴 했지만 형편이 더 어려운 상태여서 내려갈 차비도 못 받은 채 헤어져야 했다. 그는 “경찰서에 처음 와서 너무 무섭다”면서 “죄 짓는 걸 알면서도 굶주림을 참지 못했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달 초에는 60대 노숙인 할머니가 같은 편의점에서 죽과 삼각김밥을 가방과 주머니에 넣었다가 점원에게 들켰다. 점원은 할머니를 지켜보다 문 밖을 나서자 바로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할머니는 “며칠째 굶어서 밥 생각이 간절해서 훔쳤다”며 싹싹 빌었지만 점원은 용서하지 않았다.
강남고속터미널을 관할하는 반포지구대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이와 비슷한 사연의 절도사건을 접수하고 있다. 터미널에 터를 잡은 노숙인이 점원의 손에 붙잡혀 오는 경우가 많지만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가 배가 고파 훔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터미널에서는 노숙인이 30∼4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숙인 임모 씨(51)는 “다른 곳보다 따뜻하고 서울역과 달리 노숙인을 내쫓지 않아 얼어 죽지 않으려고 터미널로 온다”며 “다만 주변에 무료급식소가 없어 끼니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선처해줄 수 없다”는 가게 주인들도 사정이 있었다. 빵 한 개는 적은 금액이지만 도난금액을 합치면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을 도둑맞는 업소도 있다. 점원 C 씨는 “며칠씩 굶었다고 하소연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한 경찰은 “빵 값 정도는 우리가 대신 내줄 수 있지만 주인들이 강하게 처벌해 달라며 한사코 거절한다”고 전했다.
경찰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즉결심판이다. 경찰은 ‘현대판 장발장’이 물건을 훔친 것은 형법상 엄연히 절도지만 배가 고파 음식을 훔쳤다는 점을 감안해 경범죄인 무전취식으로 간주해 즉결심판으로 넘긴다. 경미한 사건을 형사입건하면 긴 재판절차와 전과자 양산 등 소모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즉결심판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것. 즉결심판에 넘어가면 20만 원 이하의 벌금 등이 선고된다. 경찰 관계자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1000원 남짓한 빵을 훔친 사람까지 절도죄로 일일이 형사처벌하기에는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하지만 업주들은 “훔쳐간 물건 값도 못 받는데 솜방망이 처벌로 절도 근절도 안 되면 우린 어쩌란 말이냐”고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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