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회사의 해고 통보에 항의하며 아파트 굴뚝 위에 올라간 경비원 민모 씨가 1일 오후 자신이 일하던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다. 민모 씨 제공
“예년 같으면 뜨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 계획을 세웠을 텐데….”
높이가 42m나 되는 굴뚝 위에서 전화를 받은 경비원 민모 씨(62)의 목소리는 거센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2012년 12월 31일 해고 통보를 받고 정오경 자신이 일해 왔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한가운데 자리 잡은 굴뚝 위로 올라갔다. 그러곤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밤새 쏟아지는 눈 속에서 비닐 한 장에 의지한 채 버텼다. 섭씨 영하 10도의 강추위에 손과 발은 마비가 된 듯 저렸다. 그는 “내가 버티지 않으면 동료들도 일자리를 잃는다”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민 씨의 해고 사유는 ‘나이가 많다’는 것. 2003년 경비원 일을 시작한 그는 근 10년 만에 아파트 관리회사인 한국주택관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주택관리 측은 취업 규칙상 정년이 60세지만 근무평가가 우수한 경비원을 65세까지 촉탁직으로 재고용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주변 아파트는 젊은 경비원이 많은데 우리 아파트는 나이 든 경비원이 너무 많다”며 근무자 연령을 낮춰 줄 것을 요구했다. 노조를 꾸린 경비원들은 62세까지 촉탁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합의를 봤지만 주택관리 측은 근무 태만 등을 이유로 민 씨 등 14명의 재계약을 거부했다.
신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주자 대표들이 지나친 고령화를 우려해 내린 결정”이라며 “이곳 급여가 다른 곳보다 높은 만큼 이왕이면 젊고 유능한 경비원을 쓰는 게 맞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박문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법규국장은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급여는 다른 곳보다 10만 원가량 많은 정도”라며 “오히려 일부 주민은 민 씨처럼 친숙한 경비원이 계속 일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고령 명예 퇴직자에게 ‘제2의 안정된 일자리’로 손꼽히던 경비원 자리도 40, 50대 조기 퇴직자가 급증하면서 위협받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구, 서초구의 고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젊은 경비원 비율이 늘고 있다. 경비원이 젊을수록 아파트 이미지가 좋아져 집값이 오르고 각종 돌발 상황에도 기동력 있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게 젊은 경비원을 선호하는 주민들의 얘기다. 하지만 “고령 경비원이 책임감이 더 강하고 성실하다”는 주민도 많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최고급 아파트 경비원은 모두 50여 명. 경비관리업체는 ‘같은 값이면 젊은 직원을 쓴다’는 방침 아래 주로 40세 전후의 경비원을 채용했다. 이곳 최고령 경비원은 53세인 A 씨다. 그는 “계약이 완료되면 최고령인 나부터 해고될까봐 두렵다”며 “50세 이상 경비원에겐 무언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 지역 부근의 다른 아파트도 40, 50대 경비원이 대부분이고 60대 이상은 3명뿐이다.
정년이 비교적 높은 곳도 근무조건은 까다로웠다. 경비원 정년이 68세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는 인원 중 절반은 1년 이상 근무하지 못했다. 경비원 서모 씨(65)는 “1년을 근무하면 퇴직금과 월차 수당 등 200만 원을 받는다. 회사는 이 돈을 아끼려고 잠깐만 졸아도 근무 태만을 이유로 1년 이내에 해직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김태환 용인대 교수(경호학과)는 “아파트 경비원은 주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를 위해 일하지만 실제론 주민들의 생활을 돕는 도우미 역할에 가깝다”며 “나이나 신체 능력보다 경험과 친화력, 성실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1일 밤에도 폭설이 내렸지만 민 씨는 굴뚝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전원 복직을 수용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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