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6일 오후 7시. 최근 주재원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온 주부 이해정 씨(40·여)가 도쿄(東京)의 중심부인 신바시 역 앞에서 승용차 운전석에 올랐다. 일본에서 핸들을 잡는 건 처음. 일본은 한국과 정반대로 운전석이 차 오른쪽에 있고 신호체계도 딴판이다.
○ 일본 첫 운전에서도 경적 안 들려
이날 이 씨가 운전한 코스는 신바시를 출발해 상업지구인 시부야를 지나 세타에 이르는 15km 구간. 한국으로 치면 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강남을 지나 송파에 이르는 길쯤 된다.
주차장을 출발해 큰길로 나선 이 씨가 가운데 차로로 진입하기 위해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자 진입하려는 차로를 달리던 차량 2대가 지나간 후 세 번째 차량이 속도를 줄였다. 여유 있게 진입 성공. 이 씨의 표정에 안도감이 돌았다. 이날 이 씨는 여러 차례 차로를 변경했지만 위험한 순간은 없었다. 진입하려는 차로를 달리는 차량 속도에 따라 많아야 2, 3대 정도가 통과한 후 그 다음 차량이 바로 속도를 줄이며 기다려줬다. 속도가 느린 구간에서는 방향지시등만 켜면 곧바로 양보를 받을 수 있었다.
출발 후 네 번째 교차로에서 이 씨는 정지선 맨 앞에 섰다. 옆을 보니 정지선을 위반한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직진 신호가 떨어졌는데도 아무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덩달아 멈칫한 이 씨가 전방을 보니 교차로 건너편이 꽉 막혀 있었다. 건너편 도로의 정체가 풀리고 나서야 정지선에 서 있던 차량들이 천천히 앞으로 진행했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교차로 꼬리물기는 이날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신호체계에 익숙하지 않아 좌회전이나 우회전 때 몇 번이나 제때 출발하지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뒤차의 경적 소리를 들은 것은 운전하는 2시간 내내 딱 한 번뿐이었다.
불법 주차도 보지 못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파리 느리지만 편안해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온 지 3년째지만 핸들을 잡은 지는 9개월 남짓한 김재연 씨(37·여)는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6시 파리 서쪽 개선문 앞에서 콩코르드 광장을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파리의 샹젤리제 대로는 차량과 인파의 물결로 가득했다.
파리 시내 제한 속도는 시속 50km지만 외곽순환도로를 제외하면 제한 속도까지 달릴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없었다. 콩코르드 광장까지 2km를 직진하는 동안 들린 경적소리는 단 한 번. 대로 한중간에서 차로를 바꿔봤다.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자 가려던 차로에서 차량 한 대가 지나간 뒤 다음 차량이 속도를 줄여줘 바로 그 차로로 진입할 수 있었다.
“차가 이렇게나 많지만 속도가 느리고 신호를 엄격하게 지키네요. 차로 변경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여긴 쉽네요^^.” 운전대를 잡은 지 몇십 분 만에 김 씨는 파리에서의 운전에 점점 자신감이 붙는 표정이 됐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우회전해 에펠탑 앞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러려면 센 강변도로를 지나야 한다. 센 강변도로는 파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일직선 도로로 신호등이 비교적 적고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이지만 평균 속도는 시속 40km를 넘지 않았다. 이 구간에서 한 번의 경적 소리를 들었다. 김 씨가 교차로에서 직진 신호가 들어왔는데도 잠시 꾸물거리는 사이 뒤에 있는 차가 경적을 울린 것. 1990년대 후반 기자의 파리 체류 시절과 비교해보면 경적 소리가 그나마 늘어난 편인데 대부분 청년층이 울린다.
도로를 달리다 왕복 2차로에서 좌회전을 하게 됐다. 프랑스는 좌회전 표시가 따로 없어 좌회전을 하려면 반대 차로에서 오는 차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김 씨가 좌회전 신호를 넣고 반대 차로에서 오는 차들이 지나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지만 직진을 해야 할 뒤의 차들은 경적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기다렸다.
2km가 넘는 생제르맹 대로를 달려 생미셸 광장에 이르기까지 불법 주차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날 김 씨가 1시간 동안 운전하면서 정지선을 넘어 횡단보도를 침범한 차량 역시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