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예산 편성권이 없지만 증액하거나 별도의 비목(費目)을 신설해 이른바 ‘여의도 스타일’로 예산의 모습을 바꿔 놓을 수 있다.
1일 국회를 통과한 342조 원 규모의 새해 예산에는 여야가 총선, 대선 과정에서 내건 민생·복지 분야 공약 예산이 대폭 반영됐다. 당장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성장잠재력 확충 등을 위한 예산은 여기저기서 깎였다. ‘실세’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구 예산은 예산 처리 마지막 순간까지 끼어들었다.
○복지 예산 8년만에 두배 수준으로
국회는 정부안에서 5000억 원가량 삭감한 예산을 확정지었지만 변화폭은 그보다 크다. 4조9100억 원의 사업을 깎거나 없애고, 4조3700억 원의 사업을 늘리거나 새로 넣었다.
방위사업청의 방위력 개선 예산은 4120억 원이 싹둑 잘려 나갔다. 대표적으로 △차기 전투기(FX) 1300억 원 △K-2 전차 597억 원 △대형공격헬기(AH-X) 500억 원 등이 줄었다. 장거리 공대지유도탄(564억 원), 전술지휘통제(C4I) 체계 현대화 사업(260억 원) 등은 전액 삭감됐다.
‘MB노믹스’를 뒷받침한 수출, 자원 개발 예산도 많이 줄었다. 무역보험기금 출연은 25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수출입은행 출자는 500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깎였다. 에너지특별회계 예산 가운데 유전개발사업 출자분에서 300억 원, 해외자원개발에서 700억 원이 각각 삭감됐다. 한국가스공사 출자도 500억 원이 줄었다.
반면 복지(보건·복지·노동) 예산은 3000억 원 늘려 ‘100조 원 시대’를 열었다. 총지출의 30%에 육박한다. 처음 50조 원을 돌파한 2005년 이후 8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불었다. ○ 예결위 3인방, 지도부 잇속 챙기기
예산안을 놓고 릴레이 협상이 한창이던 때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비목 신설 동의서를 각 상임위로 보냈다. 상임위에서도 요구하지 않은 예산을 막판에 끼워 넣을 때 필요한 절차다. 그중엔 경기 남양주시 한우프라자 추진 예산(20억 원)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신설 예산(26억 원)을 각각 국유재산관리기금과 축산발전기금을 활용해 새해 예산에 넣겠다는 내용도 있다. 막 취임한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남양주갑)의 ‘지역 챙기기’ 예산이다.
여야 지도부의 지역구 예산도 눈에 띄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지역구가 있는 인천의 경우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 건립 예산으로 615억 원이 새로 편성됐다. 이한구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의 수성의료지구 교통망체계 타당성 조사 사업비는 당초 5억 원에서 182억 원으로 훌쩍 뛰었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지역구인 전남 목포의 경우 목포대 천일염연구센터 예산이 4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늘었다. 목포대교 자살 방지용 폐쇄회로(CC)TV 설치에도 10억 원이 증액됐다. 박 전 원내대표는 1일 지역민들에게 “목포와 전남도 관련 예산 총 2001억 원을 확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예결위의 막강 권력인 ‘3인방’ 장윤석 위원장(경북 영주), 새누리당 간사 김학용 의원(경기 안성), 민주당 간사 최재성 의원(남양주을)의 지역구 예산도 무더기로 들어갔다.
○ ‘모래성’ 균형재정
새해 예산에는 국회의 ‘부대의견’도 34건이나 주렁주렁 달렸다. 정부 부처가 실제 사업을 집행할 때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한다고 지침을 주는 것으로, 또 다른 증액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대선 공약 중 예산에 미처 넣지 못한 부분을 부대의견에 덧붙여 부처를 압박한 것이다.
올해 나라살림에서 균형재정의 기조는 일단 겉으론 유지됐다. 그러나 복지 예산은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로 계속 늘어나는 속성이 있어, 앞으로도 균형재정 기조가 지켜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