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 <3>사람 잡는 불법 전조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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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공포의 눈

눈을 가리고 운전하라는 건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이다. 순간적이나마 운전자의 눈을 멀게 하는 상향등과 불법 HID램프는 치명적이다. 앞뒤 차량이 상향등을 비추자 기자는 눈도 뜨지 못하고 당황하기만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눈을 가리고 운전하라는 건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이다. 순간적이나마 운전자의 눈을 멀게 하는 상향등과 불법 HID램프는 치명적이다. 앞뒤 차량이 상향등을 비추자 기자는 눈도 뜨지 못하고 당황하기만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직장인 이모 씨(30)는 그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다리가 떨린다. 지난해 12월 4일 오후 8시경 인천 부평역 사거리를 시속 60km로 달리던 중 맞은편에서 신호대기 차량의 상향등이 이 씨의 눈을 때렸다.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당황한 나머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사방에서 경적소리가 울렸다. 3초 정도가 지난 뒤 겨우 시력이 돌아온 이 씨. 그의 차는 이미 중앙선을 반쯤 넘어 있었다. 이 씨는 “흔히 말하는 ‘눈뽕’(강렬한 빛 때문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는 현상을 가리키는 은어)을 겪어 보니 상향등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도로는 ‘빛 전쟁’ 중이다. 상대 운전자의 시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상향등을 켜 놓고 질주하거나 불법 HID(High Intensity Discharge·고광도 가스 방전식) 램프를 달고 과속을 일삼는 운전자가 비일비재하다. 눈앞에 손전등을 비추는 것과 마찬가지라 상대 운전자의 시력을 순간적으로 잃게 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시동 꺼! 반칙운전] 사람 잡는 불법 전조등
상향등은 다른 운전자에게 도로상의 위험을 알리거나 앞쪽 상황을 알기 힘든 굽은 길을 지날 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외다. ‘무조건 내 시야만 확보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운전자들은 상향등을 켠 채 운전하기 일쑤고 도로 위에서 사소한 시비가 붙었을 경우 상대 운전자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해 사용한다.

운전 경력 8년차인 윤모 씨(32)도 수시로 상향등을 사용하는 ‘반칙운전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갑자기 옆차가 끼어들거나 너무 느리게 가면 상향등을 깜박거리며 경고한다. 위험한 행동인 것은 알지만 나름의 복수인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씨는 “상향등이나 불법 HID에 당해 봤느냐”는 질문에는 “기분 나쁜 건 둘째고 순간적으로 눈이 아플 정도로 부신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교통안전공단 강병도 처장은 “마주 오는 차량이 상향등을 켜면 도로에 보행자가 있어도 시야에서 사라지는 ‘증발현상’이 일어나 보행자를 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HID 램프는 더 위험하다. HID 램프는 일반 전조등의 3분의 1 전력으로 수십 배 높은 광효율을 제공하고 색이 자연빛과 흡사해 운전자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정품 HID보다 불법 HID를 설치한 운전자가 더 많다. 정품은 전조등 빛의 방향이 맞은편 운전자의 눈을 향하지 않는다. 또 함께 설치된 ‘자동광축조절장치’가 차가 오르막을 오를 때 자동으로 빛을 아래쪽으로 비춰 운전자의 눈부심을 방지한다. 불법 제품이 맞은편 운전자의 눈에 직접 빛을 쏘는 것과 다르다.

교통안전공단이 30명의 실험자를 대상으로 눈부심 노출 후 시력 회복 시간을 확인한 결과 일반 전조등을 봤을 때 시력 회복 시간은 평균 3.23초인 데 반해 개조 HID 전구는 최대 4.72초가 걸렸다. 시속 80km로 달리고 있었다면 브레이크를 밟기까지 74m, 차량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는 140m를 더 달려야 한다. 도로에서 140여 m를 눈을 감은 채 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정품 HID 램프의 가격은 100만 원이 넘는데 불법 제품은 10만 원 선이다. 인터넷상에서 불법 HID를 검색한 결과 ‘눈의 피로도를 낮추고 싶다면 HID 설치하고 안전운전하세요’ 등의 불법 HID 판매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포구 성산동의 한 자동차정비소 직원은 15만 원을 제시했다. 이 직원은 “눈이 한결 편하고 운전이 쉬워진다. 초보 운전자들에게 더 필요하다”며 “누가 100만 원도 넘는 정품 HID를 설치하나. 우리 것은 탈부착도 쉬워 단속에 걸릴 것 같으면 빼면 된다”고 자랑했다.

이처럼 불법 HID가 판치지만 당국의 단속은 쉽지 않다. 불시에 차를 세워서 전조등 불빛을 점검해야 하고 정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차 뒷면을 눌러 전조등 불빛의 방향을 체크해야 한다. 하지만 운전자가 손쉽게 탈부착할 수 있어 단속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 적발된다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구조변경 승인 없이 HID를 설치해준 무등록 정비업자와 이를 장착한 운전자 33명을 적발했지만 불구속입건했다. 자동차관리법상 불법 HID 램프를 장착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이호상 책임연구원은 “상향등과 불법 HID 전등은 달리는 차 앞에서 섬광탄을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이 자칫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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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이은택 기자 dong@donga.com  
공동기획: 경찰청·손해보험협회·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안전공단
#전조등#반칙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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