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현장을 남편에게 들킨 직후 수치심 때문에 주부가 한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유족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할까. 자살의 경우엔 보험금을 못 받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 사건에서는 다른 판결이 나왔다. 남편에게 불륜을 들킨 주부의 심리상태를 법원이 ‘심신상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심신상실이란 사물에 대한 변별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다. 예를 들어 기억을 전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 사물에 대한 분별 자체가 불가능한 지적장애 상태 등이 심신상실에 속한다.
서울에 사는 주부 A 씨(당시 42세)는 2011년 11월 2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육군 준장 B 씨(당시 53세)와 소주 3병, 양주 1병을 마신 뒤 대리운전사를 불러 자신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차에는 B 씨가 동승했다. 아내가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자 A 씨 남편은 주차장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A 씨와 B 씨는 그것도 모르고 아파트 입구에 차를 대고 차 안에 머물렀다.
오후 11시경 A 씨의 차량을 발견한 남편은 차문을 열었다. 불륜이라는 의심을 살 만한 장면을 목격한 남편은 격분해서 B 씨와 몸싸움을 시작했다. A 씨는 두 사람을 말려 진정시킨 뒤 남편에게 “집에 들어가 있으면 곧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인근 한강변으로 가 밤 12시 30분경 구두를 벗고, 핸드백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몸을 던져 자살했다. 경찰은 B 씨에 대해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고 군 당국도 다른 조사를 벌이지는 않았다.
아내가 사망하자 남편은 보험사를 상대로 “사망보험금 2억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보험사 측은 ‘자살 등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관 조항을 근거로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조윤신)는 “상법엔 자살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보험사 약관에 심신상실, 정신질환 등으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경우는 자살이라고 해도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다”며 남편에게 보험금 2억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가정과 직장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A 씨의 평소 상황을 미뤄봤을 때 불륜 현장을 들킨 A 씨가 극도의 수치심과 흥분에 휩싸여 제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자살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문제를 놓고 사안별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 2003년 부부싸움을 하던 중 베란다 창문으로 뛰어내려 숨진 주부 C 씨에게는 보험금이 지급됐다. C 씨는 빚보증 문제로 남편과 다투던 중 몇 차례 뺨을 맞고 남편이 ‘같이 죽자’며 베란다로 밀치자 갑자기 뛰어내려 숨졌다. 당시 법원은 “매우 흥분된 상태에서 싸우다 C 씨가 자살한 것은 극도의 흥분과 심리불안을 이기지 못해 심신상실 상태에서 벌어진 일로 판단된다”며 보험금 1억5000만 원을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남편의 실직으로 우울증 등에 시달리다 2004년 아파트 비상계단 창문으로 몸을 던져 숨진 D 씨에 대해 법원은 “남편의 실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심신상실의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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