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 시험문제, 2000만원에 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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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중등 장학사 합격자 19명중 15명 부정 연루 의혹… 경찰, 피의자 신분 곧 소환
구속 장학사가 검은거래 제안… 자살기도 출제자 끌어들인듯

장학사가 방문하는 날이면 학교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다. 복도와 유리창을 반질반질하게 청소하고 교실 게시판을 말끔히 단장해야 했다. 장학사는 ‘교육 전문직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초중등 교육에서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랬던 장학사 자리가 ‘검은 뒷돈 2000만 원’ 때문에 추락하고 있다. 충남지방경찰청은 10일 “지난해 충남도교육청 중등 장학사 합격자의 4분의 3 이상이 시험문제를 돈으로 샀을 가능성이 높아 혐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뇌물공여 혐의로 10일 경찰에 구속된 충남 천안의 현직 교사 김모 씨(47)는 지난해 7월 충남도교육청 교육전문직(장학사) 선발 시험을 앞두고 태안교육지원청 소속 장학사 노모 씨(47·구속)의 전화를 받았다. 노 씨는 “2000만 원을 주면 장학사 시험문제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돈을 건넨 뒤 논술 문제 6문항과 면접 문제 3문항 등 9개 문제를 받았다. 이 문제들은 시험에 그대로 출제됐다. 김 씨는 ‘식은 죽 먹기’로 시험에 합격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씨는 시험을 앞둔 교사에게 먼저 검은 거래를 제안했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모두 현금으로 받았다. 연락할 때는 철저히 대포폰을 사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노 씨가 3대의 휴대전화에 10개 이상의 유심칩을 갈아 끼우면서 통화 추적을 피하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전했다. 돈을 주고 문제를 받았다고 인정한 일부 교사들은 “왜 실토했느냐는 주변의 엄청난 비난과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김 씨를 포함해 2명 이상의 교사가 돈을 주고 문제를 미리 받았다고 시인했고 다른 교사 A 씨도 2000만 원을 줬다고 털어놨다고 밝혔다. 장학사 시험문제의 공식 매입가는 2000만 원이었던 셈이다. 한 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 면접에서 떨어져 필기시험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장학사로부터) 시험문제를 얻은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 역시 더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잘못된 제안에 응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노 씨의 대포폰 통화 기록과 현금 전달 정황 등으로 미뤄 지난해 충남도교육청 중등 장학사 합격자 19명 가운데 15명이 거래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아 혐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시험출제위원으로 8일 음독자살을 기도한 장학사 박모 씨(48)와 구속된 노 씨 외에 충남도교육청의 시험관리 부서 교원 3명을 추가로 수사할 예정이어서 총 수사 대상은 20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장학사 선발에는 150명가량이 응시해 초등(유치원 포함) 20명, 중등 19명 등 모두 39명이 합격했다.

경찰은 노 씨가 장학사 시험 동기이자 출제위원인 박 씨, 그리고 시험 관리를 맡은 다른 교원 등을 끌어들여 문제를 알아낸 뒤 교사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의 장학사 시험에도 비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장학사 시험출제위원들은 외부와 차단돼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평가한다. 시험출제위원을 지냈던 한 전직 교장은 “장학사 시험을 임용시험처럼 국가고시로 전환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장학사#시험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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