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고3 학생들은 모의평가 기회가 겨우 두 번(6, 9월)뿐이에요. 그런데 6월 모의평가에서는 영어 듣기평가도 못 치르게 생겼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진학지도 교사들의 목소리는 계속 높아졌다. 고교 현장에서 느끼는 선택형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문제점을 교육당국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말이었다.
영어 듣기평가가 어려운 이유는 같은 날(6월 5일)에 고3은 모의평가를 고1, 2는 학력평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A, B형 모의평가를 1∼3학년이 모두 치르려면 영어 듣기평가를 6종류나 틀어줘야 한다. 시험시간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고교는 없다.
주석훈 인천하늘고 교감은 “매년 다른 날 치르던 시험을 올해는 하필 같은 날 잡아놓은 건 그만큼 학교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며 “듣기 비중은 잔뜩 올려놓고 평가는 못하게 해놓다니…”라고 한숨을 쉬었다.
주 교감과 전경렬 서울 상일여고 교감, 임병욱 인창고 교감, 김혜남 문일고 교사, 이성권 대진고 교사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였다. 서울진학지도교사협의회 임원들이다. 진학지도 경력이 10년 이상인 베테랑이지만 어느 해보다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들은 선택형 수능이 시기상조인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예를 들어 인문계 고3 시간표에 국어 B형과 영어 B형 과목을 다 넣으면 수업시수가 부족해 수학을 빼야 하는 것을 정책 당국자들이 아느냐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지난해 5월 치른 고2 예비평가 결과 우리 학교 국어 A형에서 만점자가 8%나 쏟아졌다”라며 “정부는 예비평가 결과를 비밀로 해놓고 이런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쉬운 수능’을 내세우며 제시한 영역별 만점자 비율은 1%다.
전 교감은 “국어교사들이 A, B형 문제를 보더니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더라. 오죽하면 서울 강동·송파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어, 영어 모두 B형으로 가르치자는 말이 나왔겠냐”고 소개했다.
김 교사는 “국어 A형은 응시인원이 적어 1등급 경쟁이 치열하다. 언어영역에서 1등급 받던 자연계 상위권 학생이 문법학원에 다니고 국어Ⅱ 과목까지 공부한다. 영어도 A형 듣기평가가 토익에서 가져온 단문 형태라서 오히려 암기할 내용이 많아졌다”며 학습부담을 줄인다며 도입하는 A형이 효과가 없다고 분석했다.
참석자 중 4명은 선택형 수능의 올해 시행방안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교감은 “아직 시행하지 않은 시험을 미루는 건 학생들에게 불리하지 않다. 오히려 고교 교육과 수능의 괴리가 너무 커서 종전으로 돌아가는 게 신뢰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임 교감은 “선택형 수능의 대원칙과 취지에 공감한다. 지난해 실시한 예비평가 성적과 출제 방향 등 기본적인 정보를 빨리 제시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다른 입장을 보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