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없는 30평대 아파트, 500만 원 이상의 월 소득, 예금 잔액 1억 원, 2000cc급 중형차….’
지난해 중순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회자된 ‘한국의 중산층 기준’이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정확한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누리꾼이 뜨겁게 반응해 “나는 저 기준 중 몇 가지나 충족할 수 있을까” 등 자조 섞인 글들을 SNS를 통해 쏟아냈다.
세계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중산층의 절대적 기준은 딱히 없다. 국내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쓰는 중위소득(전체 국민을 소득 순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 기준이 널리 이용된다. 특정 가구의 월 소득이 중위소득의 50∼150% 범위에 들면 중산층, 50% 이하는 저소득층, 150% 이상은 고소득층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한국의 중산층 가구의 비율은 67.7%(비임금 근로자를 포함한 2인 이상 가구 기준)다. 국내 가계의 중위소득은 월 350만 원으로 한 달에 175만∼525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중산층에 속한다. 중산층 비율은 1990년에 75.4%였지만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등을 거치며 2000년 71.7%, 2005년 69.2%, 2010년 67.5% 등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게다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자각(自覺) 중산층 비율’이 이보다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8월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의 20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46.4%에 불과했다.
‘나는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인 50.1%였고 ‘최근 5년간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떨어졌다’고 답한 사람도 15.5%나 됐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조기퇴직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귀속(歸屬) 의식’이 약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에 소득 외에 보유자산, 직장의 안정성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서도 ‘저소득층으로 떨어졌다’고 대답한 응답자들은 계층 하락의 원인으로 ‘소득 감소’(32.7%) 외에 ‘대출 이자 등 부채 증가’(17.6%) ‘불안정한 일자리’(14.3%) 등을 함께 꼽았다.
유병규 현대경제원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가 ‘통계적 중산층’과 ‘자각 중산층’ 비율의 차이를 줄이려면 소득뿐만 아니라 일자리 여건, 사회적 지위, 문화 생활 등에 대한 대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은 문화적, 정신적 자산을 포함해 다양한 중산층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은 중산층의 조건으로 △외국어를 하나 정도 할 줄 아는가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는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는가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하는가 등을 제시했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먹고살아 가는 데 충분한 연소득이 있지만 퇴근길의 피자 한 판, 영화 관람, 국제전화 등을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할 순 없는 사람’이라는 소비력 중심의 기준을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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