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딸과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어머니 정모 씨(48)는 지금까지 남매의 키를 키우기 위해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는 데만 2360만 원을 썼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성장판 검사’를 받은 게 시작이었다. 아들의 예상 키가 ‘173cm’로 나오자 1년에 약 1000만 원 하는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를 받도록 하기 시작했다. 딸도 540만 원을 주고 성장호르몬 주사를 함께 맞았다. 모두 5년 전의 일이었다. 정 씨는 “1년에 5cm 정도 자라던 아들이 주사치료를 받은 뒤 6.5cm 자라 좀 실망스러웠지만, 매년 4.5cm 정도 자라던 딸이 9cm까지 자랐다”면서 “그래서 지난해 1년간 820만 원을 주고 성장호르몬 주사를 또 맞았다”고 말했다.》
초경 늦추려 성호르몬 억제주사까지
사회 전반에 외모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키 지상주의’ 사회가 되자 요즘 자녀의 키를 1cm라도 더 키우기 위해 연간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는 ‘키 크기 전쟁’이 벌어진다. 과거에는 주로 또래 아이보다 키가 작은 자녀를 둔 부모들이 아이의 키를 키우려 골몰했지만 최근에는 평균 이상 키를 가진 자녀의 부모들도 많은 돈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초등 4학년 딸을 둔 어머니 고모 씨(40·서울 강남구)는 “요즘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성장판 검사’는 기본”이라면서 “최근엔 딸의 ‘오다리’가 키 크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잘 때 착용하는 다리교정장치(120만 원), 다리교정용 신발 깔창(35만 원), 키 크는 한약(100만 원), 키 크는 홍삼제품(40만 원)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일부 초등생 부모는 딸아이의 초경을 늦추기 위해 성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히기도 한다. 여학생의 경우 초경을 하면 키가 거의 자라지 않기 때문에, 초경을 늦춰 조금이라도 더 키를 키우려는 것이다.
초등 5학년 딸을 둔 어머니 오모 씨(40·서울 서초구)는 “아이가 28일 주기로 성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고 성장호르몬 주사는 매일 맞는다”면서 “최종 신장이 최소 165∼168cm정도는 됐으면 한다“고 했다.
성장클리닉 전성시대
키를 키우려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자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정형외과, 소아과, 한의원, 운동센터 등에는 ‘성장클리닉’이 성업 중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키 크는 방법’을 내세우며 학생들의 겨울방학을 맞아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많게는 1년에 1000만 원 내외의 비용이 든다.
서울 강남구의 한 성장호르몬 전문병원의 상담실장은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을 경우 한 달 비용이 130만∼150만 원이고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면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검사비용으로는 성장판과 뼈 나이 검사 5만6000원, 호르몬 치료를 위한 혈액검사 30만 원, 성조숙증 검사 13만 원 등 대략 50만 원이 든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의 한 성장전문센터는 ‘키 크는 운동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1년 회비로 700만 원을 받는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2, 3회 센터를 방문해 1시간 반 동안 매트에서 하는 체조, 유산소운동, 근력강화운동 등을 한다. 이 밖에도 ‘성장전문’이라는 이름을 내건 한의원에서는 ‘키 크는 한약’을 약 50만 원에 판매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키가 작아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이들 시설을 찾는 경우가 많다. 최근 ‘키 크는 한약’을 구입한 학부모 김모 씨(48·여·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공부는 뒤처져도 열심히 해 다시 따라잡을 수 있지만, 키는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구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액의 시술을 받거나 특정 약을 먹는다고 키가 무조건 자라는 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기형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소아성장 전문)는 “영양을 비롯한 외부적 요소도 키가 자라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부 방법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성장호르몬 주사도 호르몬이 부족한 아이에겐 도움이 되지만 수치가 정상인 아이에겐 큰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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