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관리하는 데 미용사 자격증이 왜 필요하죠? 밤잠 줄여 가며 공부하고 돈도 수백만 원이나 들여 힘들게 자격증을 땄지만 벽에 걸어 놓는 것 말고는 아무런 쓸모가 없네요.”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대형마트 4층에서 49m² 크기의 네일숍 ‘까사벨르’를 운영하는 이상정 사장(36)은 14일 찾아간 기자에게 카운터 뒤 벽에 걸린 ‘미용사 면허증’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고객들의 손톱을 다듬어 주느라 바쁜 종업원들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용사 면허증이 있으니 그래도 헤어 미용을 좀 아시겠네요?”라고 물었더니 이 사장은 “네일숍을 운영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취득한 겁니다. 자격증을 딴 뒤로 배운 기술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어 다 까먹었습니다”라며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장뿐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3명의 네일리스트는 모두 미용사 면허증이 있다.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미용’에는 파마, 머리카락 자르기, 머리카락 모양 내기, 머리 피부 손질, 머리카락 염색, 머리 감기, 눈썹 손질, 얼굴의 손질 및 화장 외에 손톱과 발톱의 손질도 포함된다. 그래서 대학에서 미용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미용사 면허증을 따야만 네일리스트가 될 수 있다.
2006년 까사벨르를 개업한 이 사장은 2010년 미용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네일숍을 시작할 때는 면허증이 없어도 구청에서 영업허가를 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09년부터 단속이 잦아져 면허증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하고 집에 돌아와 쉴 틈도 없이 파마, 염색, 커트 등 흥미도 없는 머리카락 손질법을 공부했다. 주말에는 학원에도 다녔다. 그는 “이름뿐인 자격증을 얻기 위해 6개월 동안 학원비, 교재비, 응시료까지 300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손재주가 좋아 단골손님이 많았지만 면허증을 따지 못해 내보내야 했던 종업원에 대해 얘기했다. “정말 실력이 뛰어났어요. 부지런하기도 했고요. 단속이 심해져 면허증을 따라고 권했죠. 그런데 하루 일해 하루 먹고사는 여성 가장(家長)이어서 여력이 안 됐어요.” ▼ “서비스업 분류해야 창업 쉬워져” ▼
부산 수영구 광안2동에서 8년간 네일숍을 운영했던 유모 씨(50·여)는 지난해 단속에 걸린 뒤 아예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자신과 종업원 2명 모두 미용사 면허증이 없어 무면허 영업으로 벌금 처분을 받은 유 씨는 “손톱, 발톱 손질과 전혀 관계없는
미용사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어야 하는 현실이 억울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면허증 없이 운영하다가 단속에 걸려 벌금을
물거나 폐업 조치까지 당하는 것을 막으려고 자격증을 빌려 명목상 업주를 변경하는 편법까지 등장했다”라고 전했다.
미용사 면허증이 없으면 네일숍을 운영하거나 종업원으로도 일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중위생관리법은 네일리스트 꿈나무들에게도 아픈
가시다. ‘업무 보조’는 면허가 없어도 된다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실제 단속에서는 종업원 한 명이라도 미용사 면허증이 없으면
처벌을 받는 게 현실이다.
네일아트 전문가가 꿈인 김하영 씨(21·여)는 “미용사 면허증이 없더라도 미용실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건 문제가 없는데 손톱 관리하는 네일숍에서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되물었다.
강문태 한국네일협회 부회장은 “한국 네일리스트들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네일컵’에서 우승할 정도로 실력이 있다. 네일아트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미용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네일을 미용업에서 분리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고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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