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여서 생활비는 국가에서 지원받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전세금으로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대구 중구의 김용만 할아버지(87)는 16일 전세금 1800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유산기부’ 형식으로 내놓기로 했다.
이달 초 김 할아버지는 평소 자신을 돌봐 주던 대구 중구청 희망사회복지팀 박태환 주임에게 전세계약서를 들고 찾아왔다. 김 할아버지는 “가족이 없어 죽게 되면 전세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박 주임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상의한 끝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박 주임과 구청 동료 직원이 증인이 돼 할아버지의 유언장을 썼고 15일 변호사를 통해 공증 절차를 마무리했다. 김 할아버지는 “많지 않은 돈이지만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박 주임은 “김 할아버지가 마지막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날 찾아오신 것 같았다”라며 “유언장 작성이 끝난 뒤 흡족한 듯 환히 웃으셨다”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실향민이다. 4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탄광에서 일하던 부모가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로 숨져 고아가 됐다. 이후 청진에서 몰래 기차를 타고 일주일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자갈치시장에서 구걸과 행상으로 생활을 이어 갔고, 6·25전쟁 때엔 국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을 하다가 30여 년 전 대구 중구에 정착해 고물을 주워 팔아 생계를 꾸려 갔다. 2000년부터는 거동이 불편해 한 달 49만5000원의 기초생활보장비를 받아 생활해 왔다.
김 할아버지는 1970년 지어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동인아파트의 10평 남짓한 집에서 2010년부터 살고 있다. 아파트 전세금 1800만 원은 김 할아버지에겐 한평생 모은 ‘전 재산’인 셈이다. 박 주임은 “김 할아버지는 통일이 되면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본 뒤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 여태껏 혼자 생활해 왔다”라고 했다.
김 할아버지의 유산 기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순악 할머니(2010년 사망)가 유언으로 5400만 원을 남긴 것에 이어 대구 지역에서 두 번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회 관계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한 만큼 중구의 부모 없는 아동 지원 사업을 위해 쓰겠다”라고 말했다. 대구 중구청은 김 할아버지가 사망하면 무료로 장례를 치러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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