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2009년 독일 가전전시회(IFA) 때만 해도 전형적인 대기업 임원의 정장 차림(왼쪽)이었지만 이달 초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는 세련된 이탈리아 신사로 변신했다. 안승권 LG전자 사장도 2009년 홍콩에서 열린 휴대전화 시판 행사 때의 딱딱한 스타일(오른쪽)에서 벗어나 올해 CES에서는 편안한 아메리칸 스타일을
선보였다. 삼성전자·LG전자 제공
최근 대기업 임원들의 스타일이 확 바뀌고 있다. 배 나온 ‘아저씨 스타일’은 찾기 어렵다. 기업인들의 외부 소통이 늘어나고, 이들의 스타일이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미치면서 나타난 변화로 분석된다.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전시회(CES 2013)에서는 달라진 ‘임원 스타일’이 확연히 드러났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체크무늬 재킷에 붉은색 포켓치프(가슴 주머니에 꽂는 손수건)를 매치했다. 국내 대기업 임원들이 유니폼처럼 입던 ‘네이비 정장’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이에 질세라 안승권 LG전자 사장도 글로벌 전시회의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넥타이를 풀었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은 “젊은 임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프레젠테이션 기회가 늘어나 외부에 합리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주는 게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내가 곧 회사 브랜드
삼성전자 윤 사장은 지난해 생활가전을 맡으면서 스타일이 바뀌기 시작했다. 주요 고객이 여성들인 데다 제품 디자인이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윤 사장이 다른 임원들에게 주름 2개 잡힌 바지 대신 몸에 붙는 주름 없는 바지를 입을 것을 권하기도 한다”며 “몸에 붙는 옷을 입어야 몸이 긴장하고, 긴장해야 혁신이 온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지난해 체중을 5kg 줄이기도 했다.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안 사장의 변신 배경에는 내부 연구원들의 ‘충언(忠言)’이 있었다. LG전자 관계자는 “연구원들이 ‘기술책임자인데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보이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정연아 이미지테크 대표는 “윤 사장의 이번 스타일에는 삼성이 얼마나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지 보여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채한석 스타일리스트는 “윤 사장은 보수적인 대기업 스타일에서 ‘이탈리안 필(feel)’로, 안 사장은 캐주얼한 ‘아메리칸 스타일’로 진화했다”고 분석했다.
유통업계 임원들도 달라지고 있다. 신헌 롯데백화점 사장이 지난해 부임 후 ‘패션을 파는 회사답게 입으라’고 직원들을 독려한 사례는 유명하다. 김현수 롯데백화점 전무가 머리 스타일과 옷을 캐주얼하게 확 바꾸는 바람에 거래처 직원들이 못 알아보고 지나쳤다는 일화도 있다. 박세훈 갤러리아 사장은 백화점 식당가를 리뉴얼 오픈하면서 직접 셰프 복장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 화제가 됐다.
젊은 트렌드에 맞춰 바지 길이를 줄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슈트를 정석대로
깔끔하게 소화하는 허창수 GS그룹 회장. 동아일보DB○ ‘회장님 스타일’도 갖가지
재계의 ‘회장 스타일’도 젊은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 패션 전문가들은 ‘회장 스타일’의 표본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꼽는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바지 길이가 최신 트렌드에 맞춰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대표적으로 옷을 잘 입는 ‘회장 스타일’로 꼽힌다.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재계 총수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본 패션 전문가들은 허 회장의 슈트를 최고로 뽑았다. 채 스타일리스트는 “몸에 맞춘 듯한 바지 길이와 소매 길이가 정석대로 잘 소화됐다”고 평가했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뉴발란스 운동화’가 혁신의 상징이 된 것처럼 해외에선 기업인들의 스타일이 고도로 계산된 전략에서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기업인과 소비자들의 직접 소통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50대 초반 대기업 임원은 “동창회에 가면 주부인 여성 동창들이 ‘왜 남자들이 더 안 먹느냐’고 타박할 정도로 다들 다이어트에 노력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