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4일 공개한 비석은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비석 2기보다 앞선 시기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내 학계의 평가다. 중국 국가문물국은 지난해 7월 발견된 비석을 약 6개월에 걸쳐 연구했으며 고구려 비석이라고 결론을 내린 데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문물보에 따르면 첫 발견자는 지안(集安) 시 마셴(麻線) 촌 주민 마사오빈(馬紹彬) 씨다. 지난해 7월 29일 마 씨는 마을 근처 강 속에서 ‘네모나고 긴 돌’을 자세히 살피다 글씨가 보여 정부에 신고했다. 국가문물국은 즉시 조사팀을 파견해 검토한 결과 고구려 시대 역사를 기록한 비석이라고 결론 내렸다.
비석은 납작하고 직사각형이며, 위쪽은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진다. 두께는 12.5∼21cm에 무게는 464.5kg이다. 앞뒤를 평평하게 만든 뒤 글씨를 새겼는데, 뒤쪽은 누군가 훼손한 듯 마모가 심해 글자를 알아볼 수 없다. 앞쪽은 상대적으로 글자가 뚜렷하나 상단은 마모가 상당해 읽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한자 예서체인 정면 글자는 음각으로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새겨져 있다.
중국 학계는 광개토대왕비처럼 추모왕(주몽)이나 하백(주몽의 외손자)을 언급한 부분을 고구려 비석으로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다. 또 발견 지점이 고구려 왕릉인 천추묘(千秋墓)에서 동남쪽으로 456m 떨어진 곳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지린 성 문물감정위원회 상무위원인 왕즈민(王志敏) 퉁화(通化) 시 문물보호연구소장은 “비석의 재질이 지린 성 장수왕릉(장군총)의 석재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국내 학계는 “연호를 배치해서 사시(四時)로 제사에 대비케 하고”와 “부유한 자들이 수묘인들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를 당대 왕이 선대 왕릉의 관리를 명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즉, 광개토대왕비가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며 세운 비석이라면 이번 비석은 그 선대인 광개토대왕이 이를 지시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분석이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새로 발견된 비석을 직접 보질 않아 단정 짓긴 어려우나 문맥상 광개토대왕비를 앞선 것 같다”며 “4∼6세기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충주고구려비보다도 먼저 제작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석비 감정에 참가했던 퉁화 시 사범학원 고구려연구원 겅톄화(耿鐵華)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석비에는 고구려 왕릉 묘지기들의 매매 문제, 20명 묘지기 우두머리의 이름이 새겨졌다”며 “고구려가 묘지기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광개토대왕이 선왕을 위해 세운 비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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