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걸린 ‘완전한 가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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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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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도와준 정식 입양 프로젝트

“지금 형편이 조금 안 좋으니까 다음에 보내 줄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2011년 3월, 중학교 2학년이던 민준이(16)는 교회에서 주최하는 방학캠프를 신청하고 싶어 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캠프여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민준이의 ‘아빠’ 안승호 씨(55)는 허락할 수 없었다. 민준이는 여권을 발급받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프지만 거짓말을 할 수밖에….

2년 전엔 민준이 명의로 휴대전화를 사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성년자가 여권이나 휴대전화를 가지려면 법정대리인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 10년 넘게 키웠지만 안 씨는 법적으로 민준이의 아빠가 아니었다. 성(姓)도 달랐다. 안민준이 아닌 김민준.

‘민준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안 씨는 결심했다. 민준이를 정식으로 입양시키기로. 민준이는 네 살 때부터 안 씨 가족에게 ‘막내아들’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1년. 서울 A 보육원의 어린이날 행사에서였다. 봉사하는 가정당 아이 한 명을 짝지어 하루를 보내게 했는데, 이때 네 살 난 민준이가 왔다.

태어난 지 약 석 달 만에 버림받았다는 민준이는 정말 예뻤다. 안 씨와 부인 김혜진 씨(52)는 이후 매주 민준이를 보러 갔다. 헤어질 때마다 아이는 엉엉 울었다. 그게 눈에 밟혀 집에 데려와 하루 이틀씩 지내기도 여러 번. 2001년 12월부터는 아예 가정위탁을 맡았다. 민준이는 할머니 아빠 엄마 형 누나로부터 귀여움을 받았다.

“나는 왜 형, 누나랑 성이 달라?” 중학교에 입학한 민준이가 물었다. 형은 말했다. “너는 엄마랑 성이 같잖아.” 어려서 천사원에서 살았던 기억을 어렴풋이 갖고 있던 민준이에게 아빠는 “널 잃어버려서 잠시 천사원에 있을 때 성이 그렇게 됐어. 나중에 꼭 바로잡아 줄게”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민준이의 성을 바꿀 길이 없었다. 친아버지가 민준이를 천사원에 맡기기 전 호적에 자신의 아들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안 씨 부부가 정식으로 입양해 성을 바꿔 주려면 친부모의 동의가 필요한데, 친부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여서 소재 파악이 안 됐다. 이때 만난 사람이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였다.

소 변호사는 우선 친모를 찾았다. 이미 새 가정을 꾸린 친모는 입양 동의를 해줬다. 2011년 6월, 소 변호사는 법원에 친양자 심판 청구를 했다. 민법 제908조에 친부모가 사망하거나 그 밖의 사유가 있는 경우 입양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에 따라 친부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확인을 받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주민등록이 말소된 친부를 상대로 친권상실 재판 청구를 거친 뒤에야 친양자 심판 청구가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11월 민준이는 ‘안민준’이 됐다. 바뀐 성을 갖고 민준이는 고등학교 입학 지원서를 냈다. 아빠 안 씨는 “아이가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전에 성이 바뀌길 바랐는데 정말 기뻤다. 소 변호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차와 비용 문제 때문에 어려웠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2일 창립 9주년이 된 ‘공감’은 변호사 7명이 공익활동에만 전념하는 국내 최초의 ‘비영리 전업 공익변호사단체’다. 아동 빈곤 여성 장애 난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 자문과 소송을 무료로 도와주고 있다. 1년에 공감이 맡는 사건은 50여 건. 공익법 제정을 위한 운동에도 열심이다.

공감은 지난해 12월 ‘공익인권법재단’이 됐다. 그 전에는 아름다운재단에 속해 있었지만 재단법인으로 등록한 뒤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됐다. 소 변호사는 “이제 스스로 재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많은 분의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민준이에게 진짜 가족을 만들어준 것처럼 ‘공감’이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면 하나은행 162-910015-36804(예금주: (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로 후원하면 된다. 02-3675-7740

※인권 보호를 위해 소 변호사를 제외한 등장인물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공익인권법재단#입양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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