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
부천 소사에 연구소-공장 지어 지역발전-전후 사회재건 앞장
공로 기려 ‘유일한路’ 조성도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경기 부천시 중동 ‘중앙공원’에 있는 유일한 박사(1895∼1971)의 동상에 새겨진 이 글은 그가 생전에 유한양행 직원들에게 강조한 어록 중 하나다.
부천시는 1999년 9월 16일 유 박사를 ‘부천을 빛낸 인물’로 선정하고 이듬해인 2000년 4월 24일 부천시청 앞 중앙공원에 박사의 동상을 건립했다. 유 박사의 동상은 앉아있는 모습의 청동좌상으로 가로 1.5m 세로 2.5m, 높이는 3m 크기다.
고향이 평양인 유 박사는 기업 활동을 하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36년 8월 2일 경기 부천군 소사면 심곡리 6만6000여 ㎡(2만여 평)의 터에 제약 공장과 실험연구소를 착공했다. 그는 또 6·25전쟁 후 황폐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기술자 양성소가 꼭 필요하다고 보고 1952년 12월 개인 주식을 담보로 부천 소사의 유한양행 공장 내에 ‘고려공과 기술학교’를 세운다. 이후 고려공과학원, 한국직업학원, 한국고등기술학교를 거쳐 1964년 유한공고 인가를 받는다. 1977년 12월 13일에는 유한공업전문학교(현재 유한대학)를 설립했다.
이처럼 유 박사가 국내 최초의 근대적 제약공장을 부천에 세워 지역경제에 이바지하고 교육 발전에 힘쓴 뜻을 기려 동상을 설립한 것이다.
유 박사가 2004년 4월 산업자원부로부터 ‘제1회 이달의 기업인’에 선정되자 부천시는 이를 기념해 유한대학 앞 경인국도 왕복 6km 구간을 ‘유일한로’로 조성했다. 당시 도로에 기업인의 이름을 붙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숨지고 한 달 뒤인 1971년 4월 8일 공개된 유언장에서는 손녀의 학자금 1만 달러와 학생들이 뛰어놀도록 만들 유한동산 조성 토지 5000평을 제외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사후에도 사회공익사업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재물의 소유보다 일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일의 의미는 인간적 가치를 높여 주는 데 있다고 믿었다. 일다운 일을 하면 돈은 뒤따르는 법이고 일은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라고 생각했다.
시는 “신사상인(紳士商人·단순한 장사치가 아닌 뜻있는 상인)이자 모범적 기업윤리를 남긴 인물로 존경받는 유 박사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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