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실력 보다 젊은女 선호? 추락하는 ‘카지노의 꽃’ 딜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2일 03시 00분


8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빌라에서 영업하던 불법 ‘바카라’ 카지노 도박장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곳 딜러 A씨(36·여)는 지방의 합법적인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공식 딜러였다. 함께 붙잡힌 딜러도 같은 카지노에서 일했던 동료였다. A 씨는 ‘카지노의 꽃’이라 불리는 딜러로 일하며 경력을 쌓고 싶었지만 합법적으로 인가를 받은 카지노는 근무조건이 열악하고 보수가 적어 일을 관두고 불법 카지노로 발길을 돌렸다.

B 씨(34·여)는 전문대 카지노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지방의 카지노에서 일하다 불법 카지노로 옮겼다가 지난해 경찰에 붙잡혔다. B 씨는 “전문성을 키우고 싶었지만 나이 드는 것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딜러가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지 감시하는 눈초리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불법 카지노에서 일하던 선배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루 평균 20만 원의 수입을 올렸지만 결국 도박 방조 혐의로 전과자 신세가 됐다.

“불법 카지노 현장엔 카지노 관련 학과 출신 딜러가 꼭 있다.” 불법 도박장을 단속하는 경찰의 공통된 지적이다. 강남 일대의 불법 카지노는 멀리 강원랜드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24시간 영업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실제 카지노를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 정식 카지노 출신 딜러까지 영입해 이를 홍보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카지노에 중독된 사람들은 딜러의 ‘손맛’과 실력도 중요하게 여긴다”라며 “딜러들의 불법 카지노 유입을 끊어야 도박범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2, 3일 간격으로 호텔을 옮기거나 일주일 단위로 오피스텔, 아파트를 옮기는 불법 카지노와 숨바꼭질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들은 카지노업계의 불합리한 딜러 처우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허가 받은 카지노는 내국인이 이용하는 강원랜드 한 곳과 외국인 전용 16곳이다.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카지노 신입 딜러 연봉은 3000만 원 선, 지방은 2000만 원 선이다. 현재 5000여 명의 딜러가 일하고 있다. 지방 카지노 전직 딜러 C 씨(30·여)는 “지방 카지노에서 월급 받아 방세와 생활비를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며 “경력이 쌓여도 정규직 전환이 어렵고 급여도 오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국내 카지노에서 일하다 해외 카지노에 취업한 D 씨(27·여)도 “딜러의 기준은 실력이 아닌 외모와 나이”라며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카지노 분위기상 경력이 쌓여도 좋은 대우를 받긴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4년제 1곳과 2년제 5곳 등 총 6곳의 대학에 카지노 관련 학과가 개설돼 있다. 딜러 양성을 위한 사설 학원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일부 카지노에선 신입 딜러를 뽑을 때 외국어 능력을 더 중시해 카지노학과 출신의 설 자리가 그만큼 줄고 있다. 수도권의 한 카지노는 지난해 신입 딜러 40여 명 중 카지노학과 출신을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카지노 관계자는 “신입 딜러는 교육생 신분으로 기술을 다시 배우므로 사실상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전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취업이 불안하다 보니 아르바이트로 불법 카지노의 문을 두드리는 대학생도 있다. 강원도의 한 카지노학과 교수는 “불법 카지노 단속 보도가 나올 때마다 우리 학교 학생이 연루됐을까 걱정된다”며 “학생들에게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고 자주 당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일부 카지노학과나 학원도 이를 근거로 ‘초부가가치 산업 카지노’ ‘미래 지향적인 직업, 딜러’ ‘연봉 5000만 원 보장’ ‘100% 전원 취업’ 등을 내세워 학생 모집에만 힘쓰고 있다. 세경대 호텔카지노경영과 윤대균 학과장은 “카지노에 대한 경제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딜러에 대한 인식과 관심도 필요하다”며 “딜러의 처우가 개선돼야 불법 카지노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널A 영상] 자작극에 몰카까지…강원랜드 카지노 ‘무법지대 복마전’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불법카지노#전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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