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화산체인 오름이 옹기종기 펼쳐진 제주시 구좌읍 지역은 ‘오름의 왕국’으로 불린다. 그 가운데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높은오름’(해발 405m)은 나무 계단으로 초입을 만들었다. 계단을 지나자 곧바로 해외에서 수입한 야자수 매트를 깔아놓았다. 굽이굽이 오솔길이었던 곳이 정상을 향하는 곧은 길로 바뀌었다. 매트를 깔면서 주변 식생마저 파괴했다. 수직 형태의 길이다 보니 지난해 태풍 ‘볼라벤’이 뿌리고 간 폭우로 골이 생길 정도로 파였다. 오름 탐방로가 오히려 오름에 생채기를 냈다.
○ 오름 훼손 갈수록 늘어
훼손은 비단 높은오름에 그치지 않는다. 18일부터 20일까지 제주지역 주요 오름을 살펴봤다. 높은오름 인근 다랑쉬오름은 거대한 분화구와 함께 주변 풍광이 일품이다. 하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탐방로에 안전을 위해 만든 높이 1m가량의 은빛 철제 봉은 주변 식생과 어울리지 않아 눈에 거슬렸다. 더 큰 문제는 임도를 낸다는 명목으로 오름 밑 사면에 너비 3.5m, 길이 2.5km에 이르는 길을 낸 것. 10∼30m 떨어진 주변에 시멘트와 자갈로 만든 오름 순환로가 있는데도 다시 소형 자동차가 지날 만한 길을 행정기관이 파헤쳐 만든 것이다. 오름 탐방객의 단골 코스인 동거문오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부 탐방로를 고무매트 등으로 깔았지만 경사도가 심해 곳곳에서 흙이 무너져 내렸고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자주 찾는 바람에 훼손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키 큰 나무가 없어 주변 조망이 뛰어난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은 탐방객이나 소 등이 마구 헤집고 다녀 탐방로가 어디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제주 서부지역 오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중 분화구로 형성된 송악산은 훼손이 심각해 정상 부분을 통제하고 있으며 문도지오름은 올레코스에 포함된 이후 인파가 몰리면서 지피식물이 자라기 힘든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제주시 시가지 부근 열안지오름에는 벌목을 이유로 작은 굴착기와 트럭이 다니는 길이 오름 허리에 뚫렸다.
○ 개발보다 보전 필요
오름은 지역에 따라 봉(峰), 악(岳), 산(山) 등으로 쓰인다. 제주 전역에 368개가 자리 잡고 있으며 국공유지 164개, 사유지 147개 등이다. 제주사람이 ‘나고 자라서 묻히는’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동식물 등 다양한 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들 오름은 대부분 화산이 폭발할 때 생겨난 화산쇄설물인 ‘송이(스코리아)’로 이뤄졌다. 토양이 단단하지 않아 발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훼손이 불가피하다.
제주지역 오름에 대한 가치는 1990년대 초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오름을 찾는 탐방객도 증가해 훼손도 눈에 띄게 늘었다. 자생식물과 약초 등의 무분별한 채취도 성행하고 있다. 훼손이 심각해지자 제주도는 오름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이용 가능한 곳과 보전이 필요한 곳을 선별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올해부터 2015년까지 생물상, 탐방로, 자연환경 훼손 정도 등을 전수 조사해 자료화할 방침이다. 올해 1차로 50개 오름을 조사해 개설할 수 있는 탐방로를 2개로 제한하고 분화구 안에는 길을 내지 않기로 했다. 제주도 한상기 환경자산보전 담당은 “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오름에 대해서는 출입을 제한하고 탐방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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