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지역 일부 대학이 정부지원금을 부당하게 받아 내거나 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긴 혐의 등으로 총장급 인사들이 잇따라 사법 처리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한 포스텍도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정모 교수(62)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실질심사는 25일 열린다. 정 교수는 연구부총장과 포스텍 나노기술집적센터 소장, 산학협력단장을 역임하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방과학기술진흥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포스텍의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정 교수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나노기술집적센터장으로 근무하면서 이 센터에 입주한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3억 원을 받은 혐의다. 대학 예산으로 반도체 생산재료를 구입한 뒤 이를 해당 업체에 부당하게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이 정 교수의 비리를 포착한 건 지난해 3월. 이 센터의 팀장급 간부 계좌로 의심스러운 거액이 들어오고 나간 정황이 포스텍의 자체 감사에서 드러나면서부터다. 포스텍은 이 팀장을 지난해 파면했다.
포스텍은 2009년 직원 한 명이 교수들의 연구비 1억 원을 가로챘다가 고발되는 일이 있었지만 교수가 직위를 이용해 기업과 관련된 비리를 저지른 경우는 1986년 개교 이후 처음이다. 포스텍이 전전긍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고의 이공계 대학이라는 자부심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2011년 9월 취임한 김용민 총장이 무엇보다 연구윤리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비리가 불거져 난감한 상황. 김 총장은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포스텍의 명예가 무너지는 느낌”이라며 “사실대로 명확하게 진실을 밝혀 포스텍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학생과 교직원도 술렁이고 있다. 2011년 12월 별세한 박태준 포스텍 설립 이사장을 떠올리는 직원도 적지 않다. 박 전 이사장은 생전에 “포스텍이 초심을 잃고 무사안일해지고 있다”고 질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팀장은 “만약 박 이사장이 이 사건을 접했다면 포스텍을 폐교시키려고 했을 것”이라며 “포스텍의 미래에 찬물을 끼얹는 비리사건에 고개를 못들겠다”고 말했다. 한 대학원생은 “포스텍에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며 안타까워했다. 포항시민들도 “포스텍은 포항제철소와 함께 포항의 자랑이자 상징인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이런 대학을 어떻게 세계적인 이공계 대학이라고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또 최근에는 대구공업대와 포항대 총장이 정부지원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대구지검은 서류를 조작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23억 원을 받아낸 혐의로 대구공업대 이모 총장(59)과 직원 5명을 구속했다. 이 총장은 직원들과 짜고 지난해 4월 교과부의 전문대학 교육역량강화 우수대학 선정 과정에서 신입생 충원율과 취업률 등을 조작해 정부지원금을 받아낸 혐의다.
이 대학은 지난해 전문대 교육역량강화 사업평가에서 전국 꼴찌 수준이어서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에 포함됐다. 이대로라면 국고 지원은 전혀 받을 수 없었지만 총장과 직원들이 서류를 조작해 정부 지원을 받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했다.
포항대 하모 총장(70)은 학생 충원과 취업실적을 높이기 위해 교과부에 허위 서류를 제출해 정부보조금 6억여 원을 부당하게 받아낸 혐의로 구속됐다. 이 돈은 학생 충원 실적을 높이기 위해 대구 경북지역 고교 교사 수십 명에게 사용돼 교사들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대구 지역 대학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이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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